'일회성 복지사업으로 끝날 것이다. ''금융사각지대를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정부가 최근 저소득층에 대한 무담보 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 Micro credit)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사업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계획은 금융권의 휴면예금과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2조원을 조성해 향후 10년간 25만세대의 저소득층에 500만~1억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중산층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시장원리에 반하는 특혜성 지원으로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제도금융권의 보완적 기능


금융위원회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추진 배경에 대해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출 연체 등의 이유로 신용등급에서 7등급 이하는 은행 대출심사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게 돼 높은 이자 부담으로 인한 부채 증가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등록대부업체의 대출 규모만 5조2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저축은행 등 제도권 서민금융회사들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고위험 · 고수익 위주의 영업에 치중하면서 정작 전통적 서민금융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에 대한 보완장치로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워크아웃이나 저금리 전환대출 등 다양한 서민금융 대책을 마련했지만 경기침체로 늘어나는 서민금융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일부 민간 기부금과 재정을 재원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추진돼 왔지만 2000년 이후 올 7월까지의 지원규모가 772억원으로 국내 총생산(GDP)의 0.005%에 불과할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체 300만명으로 추산되는 신용불량자를 위한 금융지원 프로그램은 사실상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이번 사업이 서민금융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저소득층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퍼주기식 특혜성 지원으로 흐를 수도


정부의 낙관적 예상과는 달리 금융권 일각에서는 '농가부채'처럼 미회수 상태의 미수금만 쌓이면서 오히려 사회적 문제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시장금리보다 낮은 연 4~5%의 초저금리 혜택이 자활 의지를 키우기보다는 신청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고 기존 제도권 금융회사 이용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래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는 것은 저금리가 아닌 최소 연 15~20%의 고금리로 저신용자에게 돈을 꿔주는 것"이라며 "은행 금리와 비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부를 통해서 조달한 돈이고 저소득층에 빌려주는 것인 만큼 이자를 많이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최대 300개에 달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 거점에서 일할 직원들을 무급의 자원봉사자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담보 대출인 만큼 대출자에 대한 정확한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이 이뤄져야 하며 밀착 모니터링을 통해 회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이를 자발적 봉사에 의존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원래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연 소득이나 대출 연체 등 정량화된 신용기준에 미달하지만 성실하고 사업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며 "연 4~5%의 이자만 받고 대출자를 꼼꼼하게 걸러내거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눈먼 돈처럼 상환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일회성 퍼주기식 지원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은 복지가 아니라 금융"이라며 "저금리가 아닌 어느 정도 적정한 선에서 이자를 받아야 대부업체 이자도 떨어지고 소비자 금융시장 전체가 안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외국처럼 고금리 수준으로 대출을 할 경우 다시 채무재조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원금과 이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밀착형 금융시스템 구축이 관건

전문가들은 정부의 판단대로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밀착형 금융지원 체제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철저한 대출관리를 통한 자금회수를 통해 기부금에 의존하는 재원을 얼마나 원활하게 '롤 오버(Roll-over)'시키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일단 금융위는 85% 수준의 회수율을 보이면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방글라데시 등 저개발 국가와 달리 한국은 창업을 통한 자활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컨설팅을 해주면서 자립기반을 만들어 주는 등의 대책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준수 금융위 중소서민금융과장은 "정부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것은 자활능력이 없는 절대 빈곤층을 복지정책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사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제도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수혜 대상에서 제외하고 중복 지원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이태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