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인 A씨는 자신이 매도한 부동산과 관련해 2007년 계약취소 소송을 당한 뒤 최근 승소했지만 심신이 지쳐 기쁜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변호사 도움 없이 '나홀로 소송'을 했던 A씨는 준비서면 제출을 위해 노구를 이끌고 15회가량 법원에 들렀다. 여름에도 무거운 서류뭉치를 땀을 뻘뻘 흘리며 들고 가야 했다.

내년부터 A씨와 같은 고생을 하는 소송 당사자들이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재판부와 사건 당사자가 인터넷을 통해 소송 관련 서류를 주고받는 '전자소송'이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때문이다.

◆내년 상반기 도입

법무부는 '민사소송 등에서 전자문서 등의 이용에 관한 법률'(전자소송법)을 입법예고,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이르면 12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19일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률이 내년 상반기에 시행돼 전자재판이 단계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무부와 대법원에 따르면 전자재판은 특허소송을 시작으로 행정소송,민사소송,가사소송,민사집행소송 등 형사소송을 제외한 모든 소송에 2011년까지 적용된다.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 등 대리인은 인터넷 전자소송 관리시스템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접속하면 전자소송을 이용할 수 있다. 시스템을 통해 소장,준비서면,답변서,상소장 등을 비롯해 판결문과 명령문,기일변경 결정문 등 소송 관련 모든 서류를 클릭과 동시에 전송하거나 받아볼 수 있게 된다.

다만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운 소송 당사자들은 기존의 우편송달 방법을 이용하거나 종이문서를 스캔해 전자문서로 등록할 수도 있다.

형사소송은 법원 외에 검찰 등 타 기관에서도 전자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이유로 전자소송법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지난 5월 법무부가 제출해 국회에 계류 중인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안'과 '약식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 음주 및 무면허운전 약식기소 사건은 피의자 동의하에 전자문서로 처리된다. 조서 작성과 기소,판결문 송달에 종이서류가 필요없어지는 것.이선욱 법무부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 추진단 검사는 "음주 및 무면허사건이 전체 형사사건의 25%가량 된다"며 "점차 다른 형사재판으로 전자소송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간 수백억원 경제효과

변호사 업계는 전자소송 도입이 소송비용 절감과 재판기간 단축,재판 편의 증대 등의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성필 법무법인 한반도 변호사는 "서류가 많을 때는 법원에 두 손 가득 서류더미를 들고 가기도 하는데 일이 훨씬 편해질 것 같다"며 "사무실 한편에 재판 관련 기록들을 쌓아둘 필요없이 컴퓨터에 저장하면 되니 사무실 공간도 절약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판 기간 단축도 예상된다. 우편 발송의 경우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10일 이상 걸린다. 따라서 통상적인 서류 재판이 6개월가량 걸린다고 하면 전자소송은 이보다 1~2개월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건당 3000원 정도인 송달료도 받지 않거나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원 업무도 크게 경감될 전망이다. 오민석 대법원 민사정책심의관은 "재판 서류를 법원 송무과 직원들이 일일이 송곳으로 뚫어 철을 하고 재판부에 갖다줘야 했는데 관련 업무가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오 심의관은 "전자소송이 뿌리 내릴 2014년께부터 연간 수백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대국민 홍보가 관건

로펌들도 전자소송 도입 대비에 나서고 있다. 서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소송 관련 서류를 모두 스캔해 파일로 보관하고 있다"며 "전자소송이 도입되면 온라인으로 곧바로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광석 로티스 대표 변호사는 "전자소송에 대비해 800만원 상당의 고가 스캐너를 구입해 사용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전자소송이 쉽사리 뿌리 내릴지는 미지수다. 소송 당사자들이 전자소송에 익숙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도입된 전자독촉의 경우도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자독촉은 채권자가 법원을 방문할 필요없이 자신의 집이나 사무실의 컴퓨터를 이용해 지급명령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제도.독촉사건을 주로 제기하는 신용카드회사나 할부금융기관 같은 금융회사가 효율적인 채권추심업무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됐으나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상당수 기업이 사용하지 않는 실정이다. 오 심의관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국민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서보미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