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교생의 86%가 대학에 가는 나라다. 세계 최강의 고도 학력 사회다. 그러나 대졸자의 학업 성취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길이 많다. 대학이 오히려 청년기의 소중한 몇 년을 좀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학위증 팔아먹는 것이 사실상 전부인 대학조차 허다하다. 말로만 고등 교육이요 위선적인 대학교육이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모든 교사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평준화도 실상은 위선의 체제다.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라는 말은 학부모들이 자녀가 대학에 떨어질 때까지 들어야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평준화는 아이들이 자신의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것을 차단하고 방해한다. 교육정책 입안가들은 평준화가 아이들의 평생 진로를 얼마나 훼방놓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없다. 외고가 논란이 되는 것도 특성화와 수월성을 교묘하게 버무린 위선적인 설립 배경 때문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공부 안 해도 대학 간다는 착각을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위선 공장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뽑기만 하면 객관식 시험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 이는 '완벽한' 입학사정관을 전제로 할 때만 성립하는 공론의 제도다. 입학사정관이 학생의 장래까지 판별한다는 것은 놀라운 착각이다. 그럴 바엔 얼굴 관상이나 유전자 정보를 통해 뽑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 중에 그 누가 적성을 알기나 했으며 알 수 있다는 것인지.정년 퇴직할 때가 되어서야 '내가 다른 전공을 했더라면'을 술회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제 고등학생들은 그 가공의 적성에 맞추어 입학사정관을 속일 수 있는 그럴 듯한 경력 포장까지 해야 하게 된 꼴이다. 교과부 주장처럼, 입학사정의 구체적 기준을 공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기준도 아니다. 대학들은 고교의 수행 평가를 기초로 한다지만 이런 방식은 오로지 체제 순응형이며 스펙 관리에 도가 튼 기회주의적 인간을 양산할 뿐이다. 더구나 전교조 교사를 믿을 수 없고 촌지교사를 믿을 수 없고 대학을 믿을 수 없다. 유명 미대와 음대가 실기 시험조차 치르지 못할 정도로 부패한 나라가 한국이다. 정부가 그런 위선적인 제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예산 지원금을 당근이라고 내걸고 파블로프의 개 먹이 주듯하는 것은 모욕적이다.

설사 그렇게 뽑을 수 있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머리 좋은 서울대 학생들이 이제는 품성도 좋고 얼굴까지 잘생긴 데다 면접장에서 언변까지 좋다면 정말 재앙이다. 성적 아닌 인생을 그야말로 서열화하는 것이다. 사교육을 없앤다는 구호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조폭 잡는다고 떠들면서 조폭이 소탕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폭은 누가 뭐래도 경제가 안정되고 투명해지면서 줄어든다. 더구나 한국 학생들의 세계적인 교육 성취도는 차라리 사교육 덕분일 것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 안에서 '내 자식의 상대 순위'를 목표로 하는 공교육의 보완재다. 사교육을 없애라는 전국의 학부모들을 붙잡고 물어보자.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저 집에서 학원 안 보내면 나도 안 보내겠다"고 말할 것이지만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 모든 평화협정과 종전(終戰) 규칙은 그 순간으로 끝이다. "야, 빨리 학원 가!"로 돌변하는 것이다.

사교육은 향학열 그 자체요 학연 사회와 격차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부모들의 오도된 열정의 총화다. 평준화가 당국자들의 위선이라면 사교육 철폐론은 학부모들의 위선이다. 지금 정부는 하나의 위선적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위선적 대안을 내놓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격차 해소 등 사회정책으로 싸워야 할 것을 교육정책으로 해결하려고 들고 있다. 드러난 외형과 감추어진 속성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의 386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