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을 맞는 날이다. 장벽이 무너지고 약 1년 뒤,서독과 동독은 다시 하나가 됐다. 1871년 1월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1세가 독일 통일을 선언한 지 119년 만의 일이었다. 독일 민족에게 두 번째 통일의 기쁨을 안겨다 준 장벽 붕괴 20주년은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통일의 의의와 관련된 기존의 논의를 반성하게 한다. 논의는 양극단을 달려 왔다. 공산권이 붕괴되기 전에는 통일의 혜택만을 강조했다. 통일이 되면 분단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가 주류를 이뤘다. 그 뒤로는 '분단 비용' 대신 '통일 비용'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통일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거대한 재앙"이라는 논리가 유행했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자면 두 견해 모두 단견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은 서독 경제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하지만 혜택도 적지 않았다. 동독의 우수한 이공계 두뇌들이 독일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시장과 아울러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에너지 수급원을 다변화하게 됐다. 러시아로부터 지상 송유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게 됐기 때문이다.

둘째,통일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고를 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는 대북정책을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과거 10년간 햇볕정책 또는 유화 정책을 취해 왔다. 끝없이 양보를 하다보면 북한 정권이 변할 것이라는 논리다. 다른 한편에서는 강경책을 고집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지도부가 없어질 때까지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장벽 붕괴는 방법론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독일 통일은 서독의 대동독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통일은 외교전의 산물이었다. 독일이 하나가 되는 것을 반기는 나라는 없었다. 미국과 소련,프랑스와 영국 수뇌들은 독일과 전쟁을 치렀던 뼈 아픈 과거사를 잘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콜 수상을 필두로 하는 서독 외교진은 장벽 붕괴를 전후해서 부시를 설득하고 고르바초프를 안심시키는 한편 미테랑과 대처의 우려를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시각은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첫째,통일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 못지않게 맹목적인 비관론을 경계해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남북한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국토 개발 사업의 물꼬를 트게 될 것이다. 내수시장이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동북부와 극동 러시아까지 넓어지는 한편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저렴하고 숙련된 노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북한의 자연자원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질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중동산 원유와 천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4강외교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일본과 러시아는 각기 다른 이유로 통일을 경계한다. 미국은 통일 한국이 친중국 국가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일본은 통일 후 식민 지배에 대한 구원(舊怨)을 갚으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중국은 약 200만명에 달하는 조선족의 동요를 우려한다.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 강력한 미국의 우방이 등장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서는 대북 정책 개발 못지않게 4강의 반대를 무마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을 갖추기 위한 인적,제도적 혁신이 시급하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함께 우리 경제 구조혁신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제기되는 한편,김정일 정권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맞이한 장벽 붕괴 20주년이 통일의 의의와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