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당시 국내 랜드마크 빌딩들을 헐값에 주워담은 해외 투자자들은 경제가 회생하자 엄청난 매각 차익을 챙겼다. 국민연금 등이 해외 랜드마크 빌딩을 속속 사들이는 것은 '땅을 치고 후회했던' 이 같은 교훈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은 런던의 신금융중심지 카나리워프에 있는 45층짜리 HSBC 본사빌딩인 'HSBC타워' 지분 100%를 7억7250만파운드(약 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HSBC 본사 빌딩 매입은 지난해 9월 뉴욕의 금융중심지 월가에서 매물로 나온 AIG 본사 빌딩을 금호종금 컨소시엄이 1억5000만달러(약 1740억원,첫해 임대료 연 1달러 조건)에 매입한 후 터진 초대형 부동산 투자다.


국민연금은 HSBC빌딩을 17년6개월 동안 HSBC에 임대를 주고 연간 4600만파운드(약 887억원)의 임대료를 받기로 한 만큼 연 5.9%의 임대수익률을 장기간 보장받은 셈이다. 켄 하비 HSBC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아시아의 가장 큰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을 이 빌딩의 새 주인으로 맞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02년 완공된 HSBC타워는 지하 4층~지상 45층 규모로 지상 높이만 210m에 달한다. 연면적 3만900평으로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187평짜리 태양광 패널까지 설치된 친환경 빌딩이어서 향후 가격 상승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국민연금 측은 밝혔다.

국민연금은 투자다변화를 위해 올해를 해외부동산 직접투자의 원년으로 삼고 적극적인 매물 물색에 나서고 있다. 김선정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분의 일부만 간접투자하면 매각 결정이나 배당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직접 매입해 매각 차익까지 완전히 가져가겠다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뉴욕 파리 시드니 홍콩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있는 빌딩에 대한 추가 투자도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격적인 매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2007년 3분기 최고점을 찍었던 영국 부동산시장은 계속 하락하다가 지난 3분기에야 4.8% 상승 반전했다. 그러나 영국의 상당수 부동산리서치업체들은 3분기 상승은 일시적인 것으로 향후 2년간의 추가 하락을 전망하고 있다. HSBC가 2007년 5월 HSBC타워를 10억9000만파운드에 매각했다가 지난해 12월 8억3800만파운드에 사들인 지 단 1년여 만에 다시 손해를 보고 파는 것도 찜찜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국민연금은 경기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인 가격 하락을 충분히 감내할만큼의 장기 투자를 하는데다 차입 없는 자기자본 투자여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