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회장 선임을 둘러싼 파열음은 소위 지배구조론이 안고 있는 위선적 구조를 잘 보여준다. 지난 10여년간 추진해왔던 소위 '증권시장을 통한 규율'이라는 구호가 공론(空論)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KB 경영권이 시장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그렇다고 정부의 규제를 받는 것도 아닌, 그래서 주인도 아닌 사람들에 의해 경영권이 결정되는 현실에 크게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

주주도 아니고 선량도 아닌 사외이사들이 안방을 차지하며 진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당국으로서는 한 방 세게 얻어 맞은 꼴이다. 사외이사 제도 자체가 원래 80%의 허구로 채워진 이론이었지만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해왔던 것이다. 자율과 독립에 대한 입 발린 약속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인 것에서부터 어처구니 없는 논란의 씨앗이 뿌려졌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관치금융을 좋다고 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누구의 잘못인가.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제도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고 주인 없는 민영화라는 논리가 안고 있는 위선이 그 우스꽝스런 몰골을 드러낸 결과다. 주식을 시장에 팔아먹는 것이 전부인 허구적 민영화는 사실 처음부터 진정한 민영화가 아니었다. 정부가 국영기업 주식을 시장에 팔아먹고도 장막 뒤에서는 여전히 주인 노릇을 계속한다면 이는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이중의 세금을 걷는 데 불과하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포철 등 소위 민영화된 공기업의경영진을 교체하기 위해 개인비리를 들추어 내야 할 지경의 파행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민영화된 공기업에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물러나지 않으려는 경영진도 웃기지만 일일이 사표 받으러 다녀야 하는 청와대 정무팀의 몰골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칭 공영방송인 MBC 임직원들의 착각도 실은 이와 비슷한 것이다. 주인 없이 오래 방치되다보니 공공 전파를 자신들 내부 구성원의 전유물로 오해하기에 이르렀 듯이 민영화된 다른 공적 기업들도 실은 유사한 함정에 빠져 있다.

당국은 궁리 끝에 국민연금을 동원해 다시 확실한 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게 뻔하다. 만일 국민연금을 통해 민영화된 기업들의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결국에는 국민연금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고 상장기업의 경영권을 정부가 모두 틀어쥐는 국가자본주의로 가거나 동전의 뒷면인 국가사회주의로 전락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정부 보유 주식의 49%를 증권시장에 매각할 계획이라는 철도공사나 우리은행 민영화도 같은 경로를 거쳐 유사한 결과에 봉착할 것이다. 주인 없는 민영화는 정부 재정을 증권 투자자의 돈으로 보충하려는 변칙적인 세금 징수와 결코 다를 것이 없다. 주식은 누가 뭐라고 해도 소유권의 증표다. 다수 대중을, 그리고 수많은 소액투자자를 대주주 혹은 소유주와 고의적으로 착각하도록 만들거나 혼동해왔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부가 해온 일이다. 좌파 정부는 그렇게 소유권 체제를 붕괴시켰던 것이다. 소액주주 운동 혹은 펀드 자본주의라는 실로 그럴 듯한 이름으로 대주주 소유권을 능멸하며 증권시장을 통해 사적 기업에 대한 공공의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고의적인' 착각이 있어왔던 것이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듣기 좋은 말은 주인이 없다는 말과 전적으로 동의어다.

국민은행 경영진 선임을 둘러싼 논란은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위선적 지배구조가 필연적으로 초래한 문제다. 당국은 사외이사나 이사회 회장 제도 운영방법에서 묘안을 짜낼 모양이지만 이는 공론(空論)에 꼼수를 덧대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듯이 기업 경영권은 소유권자를 정해 그에게 주는 것이 맞다.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