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등학교 운동회는 온 동네의 축제였다. 학생들은 청 · 백팀으로 나눠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쳤고,마을 주민들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운동장을 에워쌌다. 운동회의 백미인 이어달리기가 시작되면 '내편 네편'을 가릴 것 없이 함께 박수를 치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회는 모두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대판 응원문화의 결정체는 프로야구다. 아예 1루와 3루에는 각각 원정팀과 홈팀이 떡하니 자리 잡고,치어리더의 조직적인 응원에 몸을 맡긴다. 팬들은 매스게임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손동작을 익혀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참여 자체가 즐거울 따름이다.

갑자기 응원 얘기를 꺼낸 이유는 대한민국의 '엄친딸'이자 '피겨퀸' 김연아의 폭탄발언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 끝난 '2009~201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역전 우승한 뒤 가장 힘들었던 경기를 묻는 질문에 지난해 말 경기도 고양에서 열렸던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라고 지목했다. 당시 한국팬들이 난데없이 337박수를 쳐 차분하게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것.급기야 "기권까지 생각했었다"는 심경까지 털어놓았다.

골프 대회에서도 지나친 응원이 늘 말썽이다. 좋아하는 선수에게만 박수를 보내고 상대방 선수에게 무관심을 넘어 훼방을 놓는 등 성숙하지 못한 응원문화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저 정도 퍼트 거리면 나도 넣겠다"는 한 마디가 미스샷을 불러온다는 얘기다.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팬은 요란스럽지 않게 라운드를 따라다니는 갤러리다. 응원하는 선수뿐 아니라 경쟁상대가 버디를 기록했을 때도 박수를 쳐주는 성숙한 팬들을 반긴다.

이달 초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 · 일여자프로골프대항전에서 양국의 관전 문화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대회의 갤러리 규모는 국내 웬만한 대회의 세 배는 족히 됐음 직하다. 그렇게 많은 갤러리도 선수가 플레이를 할 때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들은 관람과 응원의 차이를 아는 것 같았다.

스포츠 선수는 팬들의 응원과 격려를 자양분으로 신기록에 도전한다. 하지만 팬들의 오버액션(?)은 오히려 경기에 지장을 준다. 척박한 스포츠 토양에서 힘겹게 배출된 스타선수들이 잘못된 응원문화로 가슴앓이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김진수 문화스포츠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