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팀장(45)은 팀내 아이디어 개발을 총괄하고 수시로 외부 업체와 접촉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두 달 전부터 갑자기 엉덩이관절(고관절)에 통증이 생겨 걷기가 힘들어졌다. 의자에 앉거나 누워 있을 때에는 덜하지만 땅을 디딜 때엔 통증이 심해서 절뚝거려야 했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자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3기.엉덩이뼈 상단부인 대퇴골두가 괴사됐다는 말에 이젠 정상적으로 걷지 못할까봐 초조하다.

관절염은 흔히 여성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지만 고관절 염증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발병빈도가 높고 위험하다. 힘찬병원에서 최근 3년간 고관절 수술환자 3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이 52%(172명)로 여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원인으로는 대퇴골두무혈성 괴사가 58%(191명)로 가장 많았고 골절 34%(113명),퇴행성고관절염 8%(28명) 순이었다.

대퇴골두무혈성괴사는 대퇴골두의 혈액순환장애로 뼈에 충분한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대퇴골두가 푸석푸석해지면서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뼈가 죽게 되면 몸의 하중을 견딜 수 없어 미세구조에 골절이 생기고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40~50대 연령층,여성보다는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확실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과도한 음주,스테로이드 남용,사고로 인한 고관절 골절,고관절 탈구 후유증,유전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힘찬병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특징이 그대로 나타났다. 대퇴골두무혈성괴사로 수술받은 환자 191명을 분석해보니 남성이 69%(131명)로 여성(60명)의 2배에 달했다. 발병 원인은 불명확한 경우가 55%(105명)로 가장 많았고 과음으로 추정되는 환자가 21%(40명),스테로이드 장기 투여와 외상이 각각 10.5%(20명),퇴행성이 3%(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음주는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여 혈액이 쉽게 응고되도록 만들며 미세혈관들을 막아 괴사를 유발할 수 있다. 40~50대 중장년 남성의 경우 잦은 술자리와 대퇴골두무혈성괴사는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준동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음주에 의한 이 질환의 발병 가능성은 10~70%로 분석되며 과음 풍토가 여전한 한국인의 발병률은 서구인보다 5배 이상 높다.

스테로이드 제제는 류머티스관절염,루푸스,전신성홍반성낭창(SLE),천식,장기이식 등 때문에 불가피하게 장기 복용하게 된다. 누적 용량이 많거나 복용기간이 긴 것도 문제지만 복용기간이 짧더라도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단기간 복용할 경우에 대퇴골두괴사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아울러 대퇴부 골절이나 고관절 탈구 등의 외상은 대퇴골두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손상시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대퇴골두무혈성괴사는 초기에 자각 증상이 없고 X-레이로 발견되지 않아 일찍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이유 없이 가랑이와 엉덩이가 아픈 게 1~2주 이상 지속된다면 초기 증상임을 의심할 수 있다. 괴사가 진행되면서 골절이 생기고 이후에 통증과 함께 다리를 절게 되므로 단기간에 대퇴골두가 광범위하게 손상될 수 있다. 조수현 강북힘찬병원 과장은 "대퇴골두무혈성괴사는 6개월 만에,빠르면 급성으로 4주 만에 심하게 진행돼 고관절뼈가 주저앉게 된다"며 "통증 부위가 모호해 허리디스크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은데 허리보다는 허벅지 안쪽이 아프고 양반다리를 하기가 불편하다면 대퇴골두무혈성괴사인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통 무혈성괴사가 시작됐으나 대퇴골두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은 초기 단계(1,2기)에는 약물치료나 감압술 등을 이용한 관절보존술이 시행된다. 감압술은 대퇴골두에 구멍을 뚫어 뼈와 혈관의 재생을 유도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구멍 부위에 사람의 뼈와 비슷한 망상(網狀) 금속 지지체를 넣어 재생 속도를 높인다. 괴사범위가 광범위한 경우(3,4기)에는 인공고관절 치환술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수술 부위 좌표를 정확히 짚어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용,수술의 정확도와 성공률을 높였다. 조기현 강남힘찬병원 과장은 "대퇴골두무혈성괴사는 해당 뼈 조직만 손상되므로 몸 전체가 썩어들어간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고관절이 내려앉는 경우라도 인공관절수술로 치료하면 관절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대퇴골두무혈성괴사의 예방·조기발견법

1.음주는 일주일 3회 이하,한번에 소주 한 병 이하로 줄인다.

2.고관절 부위 골절상 후에는 1년 동안 두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다.

3.장기이식을 받았거나 면역계 및 순환기 질환이 있으면 정기검사를 받는다.

4.가랑이와 엉덩이에 이유 없는 통증이 1~2주 이상 지속되면 병원을 방문한다.

5.다리를 절거나,한쪽 다리가 짧아진 느낌이 들면 병원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