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용 없는 성장론'에 기반하여 일자리를 만들겠다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저널리즘의 용어요 착시며 오류다. 사이비 경제논평에 등장하는 이 그럴듯한 단어는 분배론을 정당화하며 종종 일자리 나누기라는 퇴행적 정책의 근거가 되어왔을 뿐이다. 이 오도된 개념은 동일한 10억원을 생산하는데 과거에는 10명을 고용했지만 지금은 6명을 고용하는데 불과하기 때문에 성장할수록 고용은 줄어든다는 식의 허무 개그를 만들어 낸다.

매출은 늘었지만 고용은 줄어든다는 것이고 그래서 고용 효과가 높은 산업에 자원을 돌리자는 것이다. 백치가 아닌지 의심스런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조차 농림어업에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주장을 내놓지 않는 것을 보면 고용 없는 성장론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전체 산업에서 지난 2000년 10억원을 생산하는데 10.9명이 필요했던 것이 2007년엔 8.2명으로 줄었다. 이 수치를 '고용 없는 성장'으로 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제조업 고용은 4.4명에서 3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전기전자는 5.8명에서 2.5명으로 급감했다. 그렇다면 고용 흡수력이 가장 크다고 주장될 만한 부문은 어디인가. 교육 · 보건으로 가면 16.3명이며 음식 · 숙박이 23.8명, 도소매가 24.6명이다. 더구나 농업은 10억원을 생산하는데 자그마치 39.3명이 필요하다. 도소매의 거의 두배요 최고다. 그런데 아무도 농림 · 어업에서 고용을 흡수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왜인가. 동일한 금액을 생산하는데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낙후된 산업이며,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네덜란드의 농업인구는 100만 달러당 2.5명이다. 같은 비교로 환산하면 한국은 41.8명이다. 이는 네덜란드가 고도의 농업국이며 한국의 낮은 농업 경쟁력을 웅변하는 수치일 뿐이다. 이것을 한국 농업이 네덜란드보다 고용 흡수력이 높다고 우길 텐가. 같은 자료의 서비스업에서 미국은 7명을 고용하고 한국은 13.7명을 고용한다. 이는 한국의 서비스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수치일 뿐이다. 정부가 고용력이 큰 산업에 자원을 돌리겠다면 이는 국민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경쟁력이 낮은 국가로 만들자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도소매 음식 · 숙박의 자영업은 지금도 과당경쟁으로 거의 반쯤 죽을 지경이다. 이 부분에 머릿수만 더 밀어넣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투자를 늘려야 할 부분은 오히려, 소위 고용 흡수력이 낮은 부분이다. 바로 이 선도 부문이 고도화되면서 경제는 진보하는 것이다. 제조업 투자를 더 늘리지 않으면,다시 말해 고부가 산업이 되지 않으면 누가 무슨 돈으로 고급 식당에 밥 먹으러 가고, 누가 고가의 유기농 농산물을 사먹으며, 누가 비싼 약을 사먹고, 변호사를 고용하며, 의사를 찾을 것인가 말이다. 생산성이 높은 부문에서 흘러 넘쳐야 아랫부분에서 일자리가 생기는 법이다. 농업 부문의 생산성이 높아져야,그래서 농민수가 줄어야 국민들의 배가 부른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도소매 숙박도 그렇고 금융서비스도 그렇고 외형상의 고용흡수력이 더 낮아져야 좋은 산업이 되고 먹고 살만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저성장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진정한 문제인 것이다.

일자리를 늘리는 길은 산업을 고도화하고 생산성을 더 끌어올리는 정공법이라야 마땅하다. 한 사람이 할 일에 두 세 사람을 밀어넣고 일자리를 늘렸다고 할 텐가. 이런 일자리는 국민소득 만 달러 이하 시대의 일자리다. 북한에 가면 실업자가 없고 구소련은 완전 고용이었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오류는 이렇게 경제를 망치는 것이며 시대착오적 기계 파괴 운동에 다름 아니다.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