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KB금융지주 회장 인사 문제가 불거지기까지 금융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어떠한 진지한 철학적 숙고도 보여준 것이 없다. 관치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구나 금융계 인맥이나 권력구조는 정권 교체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다. 물러나는 사람도 자신이 왜 물러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좌파 권력의 등 뒤에서 기회주의적 비선을 타고 들어섰던 소위 월가의 앞잡이들과 외환위기 이후 혼란기를 틈타 금융의 중추로 진입해 들어왔던 인맥들이 고스란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왜 나만 나가라고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도 지난 10여년의 금융정책이 달라진 것이 없고 금융을 인식하는 방향과 깊이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빌딩 정문을 지키는 수위가 얼굴을 모르는 주인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전국의 은행 빌딩을 지키는 수위 아저씨들 중에 등기 이사,다시 말해 은행이나 회사의 주인인 사외이사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이런 엉터리 제도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데 당국은 이를 국민은행 문제로만 다루어왔다. 국민은행의 경우라면 김정태 행장 당시로까지 그 뿌리는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가 보유하던 4% 남짓의 잔여 주식을 다 팔도록 누가 움직였고 누가 결정했는지를 놓고 당시부터 여러가지 풍설이 많았다. 정부가 주식을 팔아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두 번 걷는 것을 민영화라고 부르고 공기업을 모조리 주인 없이 만들어 놓고 증권시장을 통한 규율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붙여왔던 것이 지난 10년이다. 물론 그 틈새를 노린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밀고 끌었다. 주인이 없다면 정부가 주인의 책무를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자리를 엉뚱한 세력들이 움직여왔다. '관치'라는 반발도 대부분은 그 사연과 진원지가 있는 것이다.

사외이사는 원래 대주주가 경영자를 감시하기 위해 '자신의 대리인'을 파견하는 제도다. 여기에 온갖 좌파단체와 자리가 필요한 관변 교수들이 달라붙어 허울좋게도 '주인을 감시하는 사외이사'라는 기형적 제도를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주인이 두눈 벌겋게 뜨고 있는 대기업에조차 이 제도를 강제했던 것이다.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는 기업 소유권을 공격하려는 자들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빙자해 주인 노릇을 하려들었던 기만적 제도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금융산업은 더말할 나위도 없다. 은행은 전체 금융시스템의 일부분이며 정부가 면허를 주는 면허장사여서 창업과 퇴출이 자유로운 일반 기업과는 그 본질부터가 다르다. 은행이 이 같은 구조적 특혜를 즐기면서 주인도 아닌 자가 주인 노릇을 하고 다락같은 연봉에 자기들끼리 스톡옵션까지 나누어 갖는 희한한 일을, 있지도 않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워 자행해 왔다. 은행장이 스톡옵션을 받는 것부터가 실은 코미디다. 은행은 벤처기업이 아니다. 은행은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지 주식을 팔아 자본금을 동원하는 회사가 아니다. 스톡옵션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타락이요 탐욕의 구조화다.

금융시장에 이렇게 투기의 독약을 풀어놓은 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하는 세계 금융위기의 본질이다. 미국 시스템의 붕괴도 주인 아닌 관리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탐욕을 정당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과도한 증권화를 규제하는 금융산업 재편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더구나 가장 심각하게 제도적으로 부패한 곳이 한국이다. 정부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회의에서 세계적 금융지배구조 문제를 다룬다지만 지금 당국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것같다. 철학이 먼저 서야 관치 논란도 없어진다. 어쩌면 이 일을 추진하는 당국조차 오류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