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4일로 1년을 맞는다. 증권업계에선 투자자 보호에선 성과가 있었지만,규제 완화와 대형 IB(투자은행) 육성은 미흡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펀드 불완전 판매가 줄어드는 등 투자자 보호는 강화됐지만,규제를 완화해 '한국판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IB를 키우고 새로운 상품 출시를 촉진시키려는 당초 법 제정 의도는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위기가 진정됐고 자본시장 성장에 필요한 기틀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 추가 규제 완화와 업계의 노력이 더해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인강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3일 "지난해 1,2단계 인가 때는 회사 신설을 막는 대신 투자 위험이 적고 기존 업무와 시너지 효과가 큰 사업을 추가하는 것을 중심으로 허용했다"며 "이르면 다음달에 발표할 3단계 인가정책에서 금융투자회사 간 인수합병(M&A)이나 새 업무를 추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펀드 '묻지마 투자' 사라져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4일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성과로는 투자자 보호가 꼽힌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자본시장법 시행 직전에 발생한 금융위기로 이 법이 추구한 정책목표가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웠다"며 "그나마 투자자 보호가 실질적으로 성과를 보인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설명의무와 적합성 원칙 등의 투자자 보호장치가 도입됐다. 증권사나 은행 지점에 가서 아무렇게나 펀드에 가입하던 '묻지마 투자'가 사라지고 개인별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권유받게 된 것이다. 펀드 가입에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문제점에 대해선 금융투자협회가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에 소액 지급결제 서비스를 허용했다. 주요 24개 증권사가 지난해 중반 CMA(종합자산관리계좌)를 통한 지로와 급여 및 공과금 자동이체 등 편리한 기능을 앞세워 지급결제 서비스에 나섰다.

◆헤지펀드 도입 서둘러야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자금 지원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제도 개선도 잇따랐다. 지난해 12월 시행령 개정으로 기업 공모투자자금의 신속한 조달을 돕기 위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제도를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기업구조조정 지원과 활성화를 위해 펀드재산의 50% 이상을 구조개선 기업에 투자하는 '적격투자자 대상 사모펀드'제도를 도입했다. 이 펀드의 경우 차입보증 한도가 기존 10%에서 300%로 대폭 확대돼 헤지펀드 본격 도입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매우 제한적인 형태의 헤지펀드만 만들 수 있게 돼 대형 증권사들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키우려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이 활성화되는데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IB들의 주요 수익원인 프라임 브로커리지는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펀드 설립에서부터 매매체결,자금대출,투자자 알선 등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헤지펀드가 활성화되지 못해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해외 헤지펀드에 대차거래 업무 정도만 서비스하고 있다.

◆증권사 자산관리 역량 키워야

자본시장법 시행 2년째에 접어드는 올해는 해외 진출과 IB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시장이 은행에서 자본시장 중심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를 위해선 증권사들이 위탁매매 수수료에 의존하지 말고 자산관리 역량을 키워야 하며 해외에서 투자 대상을 찾아내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국장도 "증권사들이 위탁매매나 단순중개에서 벗어나 기업공개(IPO),M&A 자문 등과 같은 전통적인 IB 업무로 전환해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금융투자회사에 대한 규제 패러다임은 은행과 달라야 한다"며 "IB는 본질적으로 다양성 이질성 과감성 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광엽/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