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4일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

일찌 감치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TV 있는 곳에 조신하게 자리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 하이라이트로 지목된 여자 피겨 쇼트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서였지요.

한국의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 였을 거고요.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담긴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가 TV화면에 등장했습니다. 연신 고개를 움직이며 긴장을 푼 뒤 플로어로 들어가 실전을 시작했지요.

아사다 마오는 그동안 번번이 저지르던 점프 실수 등을 깨끗이 날려 버리며 예쁜 스케이팅을 선보였습니다.
마지막엔 얼굴엔 환한 미소를 띄우며 만족감을 나타냈고요.

심판들은 이어 그녀에게 73.78이라는 높은 점수를 줬고 이를 본 그녀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곧이어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얼굴엔 약간 긴장감이 깃든 듯 했지요.

그 순간 그녀의 '심장'에 몰아친 중압감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합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올림픽 무대인데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당연히 금메달을 그녀의 몫이라고 기대하는 실정이니까요.

게다가 (이런 표현쓰고 싶진 않지만) '라이벌'로 지칭하는 아사다 마오 선수가 눈앞에서 심판들로부터 "참 잘했어요"라는 평가와 함게 높은 점수마저 받았으니….

플로어 중심에 선 김연아는 손가락으로 눈가에 묻은 무언가를 닦아내더니 이내 울리는 007 음악과 함께 스케이팅을 시작했지요.

물 흐르는 듯 한 매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스케이팅과 연기.

차원이 다른 높이의 점프와 회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냈지요.

압박감이 최고에 달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이 도저히 넘보지 못할 수준의 그것을 해내고 "퍼펙트"라는 말이 절로 쏟아져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어 심판들이 그녀에게 부여한 점수는 쇼트 역사상 가장 높은 78.50점.

아사다 마오 보다 무려 4.72점이나 앞선 것입니다.

이 점수는 경쟁자 아사다 마오, 조애니 로셰트, 안도 미키 등의 팬들에게 "모두 합죽이가 됩시다. 합! "을 외치게 했습니다.



이날 피겨 경기를 지켜보다 문득 지난 1985년 한국에서도 상영된 한 영화가 머릿 속을 스쳤습니다.

미국의 밀로스 포먼 감독이 메거폰을 잡았으며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8개 부문상을 휩쓴 '아마데우스'인데요.

'음악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천재적 재능을 시기한 나머지 그를 독살한 것으로 말해지는 '살리에르'라는 음악가의 고백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두 부문에 이런 대사도 나온다고 합니다.

"And now I confess the wickedest thing I did to him.(그리고 나는 이제 내가 그에게 했던 가장 잔인한 일을 고백하려고 한다.)"

당대 살리에르는 요세프 2세의 궁정음악장의 신분을 가질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로 얘기됩니다.
하지만 천재인 모차르트를 절대 넘어설 수 없는 '2인자'라는 거고요.

이 영화에 내포된 흥미로운 요소 두 가지 있는데요.

첫째는 영화 제목이자 모차르트의 미들네임에 쓰인 '아마데우스' 입니다.

아마데우스는 '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라는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다시 말해 신이 부여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라는 얘깁니다.

살리에르가 시기하고 질투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지요.

두번째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 탄생된 것인지 어쩐지 확인할 수 없지만 '살리에르 증후군'이란 단어입니다.

살리에르 증후군은 아무리 노력해도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1인자'를 넘어설 수 없는 '2인자의 아픔'으로 해석된다고 하고요.

아사다 마오가 지난 24일 젖 먹던 힘까지 내 뛰던 점프'에서 '살리에르 증후군'이 떠오른 건 제가 단지 한국인인 까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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