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의 하나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단순소박한 기대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입학사정관 제도는 선의로 만들어진 제도'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사고의 편린이다. 교육은 명분이 아름답기 때문에 선의로 포장하기에 더욱 좋다. 비리에 휩싸여 있는 자율고 입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설계가들은 언제나 이 세상을 천국 비슷한 무엇으로 만들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자랑한다. 때문에 수단보다는 목적의 정당성에 주목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의는 언제나 악한 결과를 만들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포퓰리즘의 보편적 생애주기다.

고교나 대학 입시전형은 전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수십가지 방법으로 시행된다. 어떤 전문가들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학교조차 학원에 의지해야 하고 대형학원의 입시 설명회에는 구름같은 인파가 몰려든다. 결국 세제만큼이나 복잡한 입시 제도는 비리와 부패로 연결되는 수많은 루프홀을 만들어 낸다. 다양한 인재를 뽑는다는 다양성 이념이나 철학부터가 그런 함정의 하나다. 입학 기준은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공평한 하나의 잣대면 그만이지만 선한 의도들은 언제나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예외와 변칙을 기획한다.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입시가 결판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잘못된 전제는 필연적으로 오도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도 포퓰리즘의 특성이다. 우리가 시장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가 나서라!'고 주장할 때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정부'에 대한 암시다. 정부 혹은 국가라는 추상성에 대한 기대감은 국가는 공평무사하고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균형적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부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이는 본질적 문제여서 대통령이 진종일 회의를 주재한다고 풀리지 않는다. 바로 이런 약점 때문에 시장이 알아서 하는 시장 체제가 보편적 제도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입학사정관 역시 '완전한 입학사정관'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성립하는 제도다. 그러나 부모도 모르는 자녀의 능력을 입학사정관이 알 리 만무하다. 결국 비리와 오류로 범벅된 끝에 이 제도는 폐기될 것이다. 비리와 부패는 제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으로,그리고 이와 비슷한 자율고 입시전형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뽑았다는 주장은 통계의 숨겨진 이면을 읽을 줄 모른다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이를 근거로 입학사정관을 전면 도입하자는 주장은 지역균형선발 학생들의 성적이 좋으니 전 학생을 이렇게 뽑자는 주장만큼이나 엉터리다. 균형선발은 지역의 1등을 입학시키는 것으로 이를 확대하면 2등 3등도 점차 들어오게 되고 결국 평균 성적은 떨어지게 된다. 어떤 방법이건 이들이 그나마 우수한 학생을 뽑았다면 이는 평준화 제도가 온존하는 조건하에서 가능한 것이지 입학사정관 제도가 좋았기 때문은 아니다. 반사이익에 불과한 것을 새 제도의 장점인 것처럼 얼버무리면 곤란하다. 입학 전형에까지 녹아 있는 인성 교육이라는 기준도 고약한 교육철학이다. 효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 그런 사례다. 대학은 공부할 학생을 뽑는 곳이지 고단한 삶에 대한 보상이나 선행에 대한 사회적 포상이 아니다.

리더십 전형을 운영하는 것은 더욱 웃긴다. 어릴 때부터 완장을 좋아한다면 나중에 정치판을 어지럽히는 외에 무엇을 하겠는가. 지도자 후보를 입시에서 뽑는다니 정말 무서운 제도 만능주의다. 그렇지 않아도 입시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마당에 기여입학을 허용하겠다는 정운찬 총리의 발언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등록금 상한제를 법으로 만들기까지 한 정부가 기여입학을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입시 코미디는 TV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