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계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을 둘러싸고 기업들의 세금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상장사와 금융사들은 새로운 회계기준을 도입해야 하는데 관련 세법은 초안조차 잡히지 않아서다.

대기업 계열을 비롯한 비상장 중소기업들도 대주주의 지분평가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담당자들 사이에선 새로 바뀐 회계기준에 적응하기도 바쁜 마당에 세법 가이드라인도 없어 회계처리에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전언이다.



◆조기 도입사 1분기 순이익도 오리무중

한 상장사 회계 담당자는 "몇 년 전부터 금융위원회가 앞장서 회계기준을 도입하는 동안 기획재정부나 국세청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전면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 세법에 대해 얘기도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새 회계기준에 맞도록 만들어질 세법에 대해 아직 감(感)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막막하다는 지적이다. 세무행정을 총괄하는 재정부 세제실에서도 오는 7월 안에 정부안(案)을 발표하겠다고만 말할 뿐 아직 뚜렷한 방향을 내놓지 않은 실정이다.

회계업계나 기업체 사이에선 "정부안이 나온 뒤 그걸 가지고 업계의 얘기를 들어가며 수정해야 할 텐데 7월께야 나온다면 올해 안에 법안이 마무리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1750여개 법인들과 상호저축은행 리스업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상장 금융회사들은 내년부터 IFRS에 맞춰 회계장부를 작성해야 한다. 1년도 남지 않았다. 이미 지난해 KT&G STX팬오션 등 14개 상장사가 새 회계기준을 조기 도입했으며,올해부터는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국가 대표 기업을 포함해 벌써 23개사가 새 회계기준으로 장부를 작성하고 있다.

이처럼 새 회계기준 조기 도입에 나선 기업들은 당장 올 1분기부터 순이익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고민이다. 기존 회계기준(K-GAAP)을 적용하는 기업들은 현행 세법에 맞춰 세무조정을 해 근사치를 제시할 수 있지만,IFRS를 도입한 회사들은 관련 세법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세금을 추정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조기 도입을 결정한 한 기업의 회계 담당자는 "일단 재무제표는 IFRS 기준에 맞춰 작성한 뒤 세금은 기존 세법에 따라 계산해 기입할 예정"이라며 "만약 올 사업연도부터 세법이 바뀐다면 사실상 상반기에 내놓는 순이익은 엉터리인 셈"이라고 전했다.

세법 개정 작업이 늦어져 적용 시기가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엔 이들 회사는 더욱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된다. 올해까지 새 회계기준을 조기 도입한 37개 기업들은 모두 재무제표는 IFRS로 작성하고,법인세 산정을 위해 다시 종전 회계기준에 따라 이중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조기 도입한 14개사는 세무신고를 위해 이달 말까지 '세무용'으로 서둘러 과거 방식의 회계기준으로 장부를 만드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 상장사 회계 담당자는 "내년 초에도 이번처럼 세무신고 때 IFRS 재무제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인력과 시간의 낭비도 문제지만 외부감사를 받지 않고 임의로 만든 장부가 세금의 근거가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상장사들 자산재평가 골머리

내년부터 시행되는 IFRS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비상장 기업의 회계 담당자들도 세법 때문에 골칫거리가 생겼다. 새 회계기준에서 채택하고 있는 자산재평가에 대해 세법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대주주 일가의 상속 · 증여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세법에서 IFRS를 적극 수용해 '재평가이익'을 '세무상 이익'으로 인정할 경우 비상장 주식을 상속 또는 증여할 때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무 전문인 한 회계사는 "현재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는 상장주식과 달리 비상장 주식은 기업의 순자산을 기준으로 가치를 따진다"며 "만약 이를 재평가해 불어난 자산가치를 그대로 세법에서 인정한다면 비상장 기업의 상속과 증여시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장부상 10억원으로 적혀 있던 토지가 자산재평가를 거쳐 100억원이 될 경우 주식의 가치도 비례해 높아진다. 경우에 따라선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 · 증여세 폭탄을 맞을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재무제표상 이 점을 생각하면 재평가를 실시해야 하겠지만 안갯속에 갇힌 세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담당자들 사이에선 "세법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대주주에게 보고조차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새 기준에 맞춘 세법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IFRS를 이미 도입한 기업의 한 담당자는 "개정 세법의 방향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할 뿐"이라며 "지금 기업 입장에선 어떻게 바뀌느냐보다 언제 법안이 나오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새 법안이 유리한지,불리한지를 떠나 적응하고 대응할 시간이 주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재후/조재희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