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과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을 놓고 고조된 노 · 사 · 정 간 갈등으로 잔뜩 경직됐던 노동계에 변화의 미풍이 불고 있다.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 등에 온건파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투쟁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고,과거 방식과 다른 제3의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새희망 노동연대'도 출범했다. 12만명 규모의 '새희망 노동연대' 출범으로 양대노총 중심의 노동계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과격한 투쟁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복수노조 허용 등이 맞물리면서 노동계의 고민이 강성(强性)에서 연성(軟性)으로의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노동자의 날,투쟁 대신 자원봉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소속되지 않거나 또는 탈퇴를 추진 중인 이른바 독립노조들이 지난 4일 '새희망 노동연대'를 출범시킴에 따라 12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 탄생했다. 아직 65만~70만명 규모의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비해 세는 약하지만 독립노조들의 차별화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새희망 노동연대는 오는 18일 2차 회의를 가지고 본격적인 향후 사업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새희망 노동연대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돌파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과 불안감에서 출발했다. 지난 3~5일 충주 수안보 서울시공무원수련원에서 열린 전임자 및 복수노조 관련 토론회와 분반토의에서는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하듯 "상명하달식 노조 운영이나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무시한 투쟁 일변도 노동운동으로는 복수노조 시대에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전임자 문제 역시 "재정적 자립을 위해서는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들을 섬기는 청렴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뤘다.

새희망 노동연대는 오는 5월1일 '노동자의 날'에 집회를 열거나 정치투쟁을 벌였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전 소속 조합원들이 사회봉사 등 공익활동에 나서'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동운동'을 지향점으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노사상생 외치는 현대차 노조

강성 노동운동 조직의 대명사로 꼽히는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등도 내부적으로 투쟁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지난 3일 한국노사관계학회 초청 만찬간담회 자리에서 "민주노총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게 시급하다"며 "좀더 온건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노동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또 노조법 관련 대정부 투쟁 방침에서 선회해 근로시간면제위원회 참여 의사를 밝히는 등 투쟁 일변도 정책에서 한발 물러서는 양상이다.

앞서 지난달 말 현대차 노조는 현대차를 세계 제1의 명차로 만들기 위한 노조 역할 등 노사 상생의 '윈-윈' 전략을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는 이어 지난 4일 소식지를 통해서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회사가 튼튼해야 노조도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노사 상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전문가들은 "변화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범위,노동계의 전임자 임금보장 단협 체결 요구 등 노조법을 둘러싼 갈등 요소가 표출되고 있어 당분간 노사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 과거와 달리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양대 노총 지도부들도 외면만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내부 혁신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