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들 ② - ‘미망인’
#"100일도 안 됐는데…" 두 전직 대통령 미망인의 동병상련 오열.

지난해 우리는 몇 달 사이에 노무현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는 불행을 겪었다.

당시 신문 · 방송들은 8월 타계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두 '미망인'이 서로 슬픔을 나누는 장면을 보도했다.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회장 왕성원)가 주관하는 '제31회 장한어머니상' 시상식이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그 해 6월엔 전몰군경미망인회에서 매년 주관하는 '장한어머니상' 시상식이 열렸다.

두 곳에는 공통적으로 '미망인(未亡人)'이 쓰였지만 그 말이 자리 잡고 있는 맥락은 사뭇 다르다.

'두 전직 대통령 미망인'에선 제3자가 홀로 남은 남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에 비해 '전몰군경미망인회'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부인들이 스스로를 가리켜 '미망인'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홀로 된 남의 부인을 가리킬 때'와 '홀로 된 부인이 스스로를 지칭해 말하는 경우'.

우리말에서 '미망인'은 이처럼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말이 존재하는 정당성이 달라지는,독특한 위치에 있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전자의 '미망인'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무심코 입에 굳은 대로 써서 그렇지 사실 '미망인'은 뜻을 알고 나면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말이다.

'미망인'에서 망인(또는 망자)은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므로,미망인을 글자 그대로 풀면 '미처 죽지 못한,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본래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남들에게 자신을 말할 때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던 말이다.

이 단어는 글자 뜻으로만 보면 남녀 구별이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여자를 가리키는,여자에게만 쓰는 말이다.

옛날에는 사대부집에서 남편이 죽으면 그 부인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한 자세로 살았다.

그래서 '미처 따라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란 의미에서 '미망인'이라 했으니 요즘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단어다.

더구나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낮추는 의미에서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다른 사람들이 죽은 이의 부인을 두고 이 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 크다.

시민운동 단체나 우리말 운동가들 사이에서 '미망인'을 버려야 할 말로 지목하곤 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자'를 이르는 말로는 미망인 말고 '과부(寡婦)'가 있다.

높임말은 '과부댁'이라 하고 순우리말로 하면 '홀어미'이다.

옛날엔 과부가 많았다. 국어사전에 '과부는 은이 서 말이고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다'(과부는 살림살이가 알뜰하여 규모 있게 생활하므로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지만,홀아비는 생활이 곤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남의 곤란한 처지는 직접 그 일을 당해 보았거나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잘 알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 과부와 관련된 속담만 수십 개가 올라 있을 정도다.

그만큼 과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였을 것이다.

'과(寡)'는 '적다,부족하다'는 의미이니 과부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부족한 부인'이다.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는 한 가지가 부족한 것임에 틀림없으니 미망인보다는 차라리 합리적인 뜻을 지닌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과부'란 단어가 그리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옛날에나 쓰던 말처럼 구시대적인 느낌을 주는 말로 인식되기도 한다.

여성문제 등을 둘러싼 환경이 예전에 비해 그만큼 나아진 데 따른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비하면 '미망인'은 어감상으로 어딘지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부나 홀어미의 자리를 미망인이 대체하는 것은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다.

'미망인'은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게 좋고,과부나 홀어미 역시 어감상 쓰기가 꺼려진다면 그냥 '부인'을 쓰는 게 가장 좋다.

다만 이 말 자체엔 남편을 잃었는지의 여부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상황에 따라 '고인의 부인 OOO씨' 식으로 쓰면 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