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CEO의 힘…애플 '아이폰'도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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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묵 '바늘'대표, 보조배터리 30만개 수출 계약
지난해 애플 아이폰용 보조 배터리를 자체 개발한 '바늘'의 강준묵 대표.그는 10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의 오디오 개발팀에서 일하던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다. 199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개구리 카세트'와 마이크로 오디오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중앙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와 디자인 전문회사인 '넵플러스'에서 18년 동안 제품 디자인에만 몰두해온 강 대표가 제조업으로의 '외도'를 꿈꾼 시점은 2008년."시대가 바뀐 만큼 이제 제조업체의 성패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감동적인 디자인을 제품에 담느냐에 달려 있다. 생산은 아웃소싱하면 된다"고 판단,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2년 여가 흐른 올 2월 초 강 대표는 미국 및 유럽 등지에 아이폰용 보조 배터리를 30만대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조만간 전국 KT의 '쇼' 매장에서 판매되며 소프트뱅크를 통해 일본에도 수출될 예정이다. 올매 매출 목표는 100억원.
강 대표는 "아이폰의 가장 큰 단점이 '배터리가 금방 방전되고 교체할 수도 없다'는 것에서 착안했다"며 "6개월에 걸친 검증작업 끝에 작년 말 애플 본사로부터 'Works with iPhone' 인증을 받은 데다 산뜻한 디자인 덕분에 미국 유럽 등지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가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사례는 드물었다. 기껏 해야 의상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의류사업을 하거나 기업들의 제품 디자인을 대신하는 디자인 전문회사를 차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디자이너들이 제조 분야 창업 전선에 하나둘씩 뛰어들고 있다. 제조업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제품 개발 및 생산을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산업 간 네트워크가 뿌리 내린 데다 디자인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잣대로 떠오른 덕분이다.
조립 가구업체 '두닷'의 김상욱 대표도 강 대표와 비슷한 케이스다.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를 거쳐 현대자동차와 디자인 전문회사(코다스디자인)에서 자동차와 의료기기 등을 디자인하던 그가 두닷을 창업한 시점은 2006년.두닷은 '한국의 이케아'란 입소문을 타면서 설립 4년 만인 지난해 3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 대표는 "디자이너로 제품 개발작업에 참여하다 보면 관련 기술은 물론 마케팅과 유통까지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며 "이런 훈련을 받은 것이 제조업을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 전문업체인 MI디자인의 문준기 사장은 새로운 활로를 뚫기 위해 제조업에 뛰어든 케이스다. 디자인 전문업체의 고객인 국내 제조업체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만큼 "이대로 가다간 디자인 전문업체가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내린 결정이다. 품목은 제품 홍보용 디스플레이 장치로 선택했다. 17인치 LCD 패널이 장착된 디스플레이 장치에 제품 홍보 동영상을 담아 매장에 전시하는 제품으로,현재 LG전자와 위니아만도 등이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작년 한 해 동안 35억원어치나 판매되며 MI디자인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했다.
문 사장은 "디자이너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 기술 전문가인 엔지니어와 시장을 잘 아는 마케팅 담당자 사이에서 문제를 조율하고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와 조율 능력만 있으면 외부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만큼 디자이너들의 제조업 진출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