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살다가 지난해 말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한 대기업 과장 김모씨(39)는 요즘 '허리가 휘고' 있다. 한 달 생활비가 50%가량 늘어났기 때문이다. 같은 크기의 102㎡형(31평) 아파트로 옮겼는데도 전셋값은 두 배가 넘었다. 모자라는 돈을 충당하기 위해 1억5000만원을 대출 받아 한 달에 이자로만 68만여원을 내고 있다. 초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다니는 학원 수도 똑같은데 한달 교육비는 130만여원에서 240만여원으로 증가했다. 평소 즐겨먹는 치킨,삼겹살,자장면 등 뭘 사먹어도 강북에 있을 때보다 돈을 더 내야한다. 하다못해 똑같은 기름도 강남 주유소에서 넣으면 리터(ℓ) 당 100원 이상 비싸다. 중계동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410만원 수준이었던 반면 대치동에서는 629만여원으로 53%가량 더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강남 진입 비용은 만만치 않다. 집값은 물론 교육비와 생필품 물가가 높아 지갑이 얇아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비용도 염두에 둬야한다. 부유층들이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눈높이로 지출을 해야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난방 안되는 3억원짜리 전셋집

강남에서 살려면 우선 높은 주거 비용을 감수해야한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5억원으로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아파트 평균 면적은 89.6㎡(27.1평)인 반면 강남구에서는 절반 수준인 48.6㎡(14.7평)에 불과하다. 서초는 57.9㎡(17.5평),송파는 66.1㎡(20평)로 강남3구가 모두 66㎡(20평) 이하다.

전세로 들어와 살기도 만만찮다. 지난해 입주한 서초구 반포동 자이 아파트의 경우 114㎡형(34평)이 8억5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강북에서는 두 배가 넘는 면적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낡은 아파트도 '강남 프리미엄' 때문에 전셋값 마련이 쉽지 않다. 1982년 준공된 서초구 반포동 모 아파트 115㎡형(35평)에 전세로 사는 이모씨는 "전셋값이 3억원인데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에는 집에서 옷을 잔뜩 껴입고 지낸다"며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수시로 보수하는 게 많아 관리비가 평당 1만원 정도 나간다"고 말했다.

외식 비용도 강남이 많이 든다. 서울시 물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노원구 튀김닭은 1마리에 평균 1만2064원인 반면 강남구는 1만3790원으로 1700원가량 비싸다. 삼겹살은 노원구가 1인분에 7510원인 반면 강남구는 8851원이었고 자장면은 노원구가 한 그릇에 3348원,강남이 4094원이었다.

◆주유소 부족이 고유가 부채질

생활물가도 비싸다. 재래시장의 경우 강북구 수유동 수유시장에서는 사과 1개에 1000원을 받고 팔지만 강남구 청담동 삼익시장의 가격은 1375원이다. 애호박은 청담동이 1개에 1980원으로 수유동(1000원)의 두 배에 달한다. 삼익시장에서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임대료가 비싸고 인건비도 더 들어가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다"며 "손님들도 가격보다는 품질과 브랜드를 더 따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물론 할인마트는 가격이 대체로 균일하다. 오히려 서초구 양재동처럼 할인마트 3곳이 한꺼번에 몰려 있어 경쟁이 치열한 곳은 다른 강북 지역보다 가격이 싼 품목들도 있다. 농협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는 짜파게티가 5개에 3400원인 반면 서대문구 신촌점은 3550원을 받고 있다.

기름값도 무시하지 못할 부담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휘발유 1ℓ당 평균가격은 서울이 1751원인데 비해 강남구는 1835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서울에서 가장 휘발유가 잘 팔리는 곳이 강남인데 회사 주유소 숫자는 가장 적다"며 "땅 주인들이 주유소 대신 빌딩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이 있는 가정이라면 교육비 분야에서 가장 많은 격차를 느낀다. 태권도 학원의 경우 강북지역은 대부분 주 5일에 9만원 정도지만 강남은 13만~17만원 정도 든다. 입시학원도 강남이 보통 20만~60만원으로 10만~20만원인 강북을 크게 웃돈다. 아이들 용돈도 더 많이 든다. PC방 비용은 노원구가 시간당 972원인 반면 강남구는 1292원이었고 도서대여점은 노원구가 권당 367원인 반면 강남구는 550원이다.

◆부담스런 체면비용

'강남 코스트'는 비싼 생활비뿐만이 아니다. 부유층과 한 공간에 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체면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반포동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는 한 법조인은 "아이 생일파티를 반 친구 모두 초대해 호텔에서 하는 게 관례"라며 "최근 아이 파티 비용으로 400만여원이 들었는데 일부 학부모들은 1000만원을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대기업을 다니며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는 L사의 한 차장(38)은 "3년 전 개포동 아파트로 이사오고 난 뒤 바로 자동차를 바꿨다"며 "아파트 주변을 오가는 고급 차량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데다 아이들마저 '우리는 왜 소형차를 타느냐'고 성화를 부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겪는 학업 스트레스도 크다. 경기도 일산에 살다 송파구로 이사온 김모씨(53)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사촌이 서초동에 사는데 애가 공부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며 "의사 선생님이 '견뎌야 한다'고 말해 그냥 대책없이 마음만 졸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신사동 '포헤어 모발 이식센터'의 강성은 원장은 "초등학생이나 중 · 고생들이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때문에 많은 상담을 해오고 있다"며 "학원 가느라 바쁜 가운데 병원에서 두피관리를 받거나 약을 먹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남에 살려면 또 극심한 교통혼잡을 감내해야 한다. 서울시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강남구의 차량 평균 속도는 20.7㎞/h로 강북권 평균(22.4㎞/h)을 밑돌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기반연구본부의 윤형렬 박사는 "강남의 도로 인프라는 좋지만 통행 차량이 워낙 많다"고 말했다.

강남은 화재 위험도 높다.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 서울지역에서 가장 많은 367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강남에는 한 빌딩 안에 고시원이나 술집,음식점 같은 여러 업소가 입주한 다중영업소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교통체증도 심해 소방차 진입로를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강경민/남윤선/임현우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