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정문엔 예전에 본관으로 쓰였던 화폐금융박물관이 있다. 이곳 지붕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둘기가 여러 마리 둥지를 트는 바람에 한은이 골치를 앓고 있다. 비둘기의 배설물은 산성이 워낙 강해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화폐금융박물관이 손상될 수도 있어서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비둘기 둥지를 일단 치웠지만,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외부 용역업체에 방안을 의뢰했다.

한은은 4월부터 또 다른 의미의 비둘기 천하가 될 것이란 말이 금융시장에 퍼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말하는 '비둘기(파)'란 경제성장을 위해 금리를 다소 낮게 운용해야 한다고 보는 정책담당자를 가리킨다.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다소 높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보는 '매(파)'와 대칭되는 말이다.

정책금리(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구인 한은 금통위는 현재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가운데 한은 내부 출신인 이성태 총재,이주열 부총재,심훈 위원 등은 '매파'로 분류되고 있다. 한은 출신이 아닌 박봉흠(경제기획원 출신) 김대식 최도성 강명헌(이상 학자 출신) 위원은 대체로 '비둘기파'에 가깝다는 것이 한은 안팎의 분석이다.

대표적 '매파'인 이 총재는 '비둘기파'인 김 차기 총재와 교체가 확정됐다. 4월엔 심훈 박봉흠 위원의 임기가 만료된다. 정부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직후 한은의 대처가 늦었다는 이유로 '비둘기파'의 중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2명의 금통위원이 모두 '비둘기파'로 구성된다면 5월 금통위부터는 '비둘기파'와'매파'의 비율이 6 대 1이 된다. 신임 금통위원에 '비둘기파'와 '매파'가 1명씩 임명된다고 해도 비율은 5 대 2로 지금의 4 대 3보다 '비둘기파'가 득세하게 된다. 금융시장에서 저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이번 2명의 금통위원은 대한상공회의소와 은행연합회가 1명씩 추천한다. 대한상의 추천 인사에는 재정경제부 출신의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사장,임영록 전 차관,임승태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은행연합회 추천 인사에는 박재환 전 주택금융공사 부사장,김수명 금융결제원장,정규영 전 서울외국환중개 사장 등 한은 출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을 전공한 대학 교수 등 학자들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