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영업실적이 투자자들 모르게 뒤바뀌고 있다. 더욱이 적자기업이 흑자기업으로 둔갑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흑자인 줄 알았는데 적자?

23일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업체인 알앤엘바이오는 지난 1월에 발표한 영업실적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고쳤다.

알엔앨바이오는 지난해 순이익이 5억6000만원을 웃돌았다고 밝힌 뒤 두 달 만에 128억원 이상 손실이 났다고 정정공시를 냈다. 돌연 흑자기업이 대규모 적자기업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에 따라 주가도 가격제한폭까지 곤두박질쳤고, 투자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태반 관련 제조사인 HS바이오팜의 순이익도 흑자에서 적자로 변경됐다. 이 회사는 지난 17일 작년 순이익이 기존 24억원에서 10억원 가량 적자를 기록했다고 정정했다. 영업이익도 34억2900만원에서 27억7100만원으로 7억원 가까이 줄었다.

HS바이오팜 관계자는 "현재 주주총회 소집결의 직후 영업실적을 공시해야하기 때문에 80~90% 정도 집계된 상황에서 실적을 내놓고 있다"며 "사실 정정보도 낸 내용도 100% 확정된 실적이 아닌 잠정치"라고 말했다. 결국 2009년 사업보고서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제출될 때 정확한 실적이 나온다는 얘기다.

복합화학소재 업체인 유원컴텍은 적자폭이 대폭 확대된 경우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부 결산이 끝난 이후 회계사가 지분법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했다"며 "내부 감사와 외부 감사 결과 차이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밝힐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동아화성도 외부감사 과정에서 지분법 손실이 반영, 실적이 조정됐다. 동화화성은 최초 공시에서 영업이익이 26억원 가량 발생했다고 공개했지만, 2억원 가량 차이가 있었다. 이로써 영업이익의 전년대비 증가율도 2011.1%에서 1877%로 줄어들었다.

이 외에도 서울식품은 지난해 영업손실이 47억7200만원에서 57억2600만원으로, 당기순손실은 49억7700만원에서 58억7300만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금호석유, 와이지-원, 성원건설 등도 당초보다 실적이 악화됐다.

◆거래소 "제재방안 없어" vs 금감원 "소명서 제출 받아야"

이러한 '올빼미 공시'로 인해 선량한 투자자들의 피해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이를 제재할 만한 뚜렷한 방안이 없다는 것.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해당기업에 일방적으로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행 제도하에서는 회사내부 결산이 끝나고, 실적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외부감사 이후 영업이익 등의 실적이 차이날 수 있다"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일부 기업들이 실적을 부풀리고 있어도 현행 제도를 바꿀 수도 없다는 게 거래소의 입장이다. 거래소는 "기업들이 우선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투자자들이 보다 빠른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는 것도 중요한 사항이므로 현행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입장은 다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재 정정 내용이 기존 발표 내용과 현격한 차이가 날 경우 고의성이 있었는 지 여부 등을 입증하기 위해 해당 회사에 소명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며 "공시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정확한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감독하고 허위공시를 제재하는 것이 거래소와 금감원이 해야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