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부분 국가의 가계부채 증가가 주춤거리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지난해 국내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얼마 전 가계부채 통계를 담당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하면서 퇴임했고,대통령도 직접 국내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를 우려했다. 그동안 국내 가계부채의 가장 큰 부분인 주택담보대출이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등을 통해 엄격하게 관리돼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처럼 가계부채 문제가 뜨거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영국의 가계부채 급증 사례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2000년대 주택경기 호황에 따른 주택모기지대출 증가와 과소비 등에 기인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70%대로 올라가면서 현재 주요국 중 가장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높아진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발생 전엔 영국 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주택가격이 급락하고,은행 건전성도 악화되면서 높아진 가계부채의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가계의 소비능력이 약화되고 개인파산도 급증하면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주요 국가와는 달리 영국 경제는 회복 속도가 매우 더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과 매우 유사한 배경으로 급증한 국내 가계부채도 충분히 잠재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국내 가계 능력에 비해 부채 규모가 크다.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영국 바로 다음인 150%대로 올라섰고,금융부채/금융자산 비율도 일본 20%대 초반,미국 30%,영국 35% 수준보다 월등히 높은 4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취약하다. 비록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은 가계의 원리금상환부담률은 하락했다지만 여전히 미국 등에 비해 높으며,만일 출구전략에 따른 금리상승 현상이 본격화될 경우 이자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셋째, 가계부채의 실물자산 담보비중이 높다. 대부분의 가계부채 증가가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부동산가격이 급락할 경우 가계부채 해결은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넷째, 자산이 없는 저소득층의 부채 부담이 유난히 크다. 한국은행의 조사에 의하면 소득분위별 1분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320%로 이는 소득 수준이 높은 4분위와 5분위의 120%대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은행건전성이 유지되는 데다,비교적 빠른 경제회복을 보이고 있어 가계부채가 아직 문제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높은 가계부채는 갑작스런 충격이 왔을 때 국내 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책당국은 보다 정확하고 세분화된 가계 실태 파악에 나서는 것은 물론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가계부채 비중이 높은 중산층 이상의 실물자산을 유동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계부채 상환능력이 취약한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금융회사도 무리하게 부채를 회수할 경우 결국 자체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금융권 전체 차원에서 가계부채 만기구조를 장기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현재의 주택담보대출을 미국 상업은행의 프라임모기지론 형식으로 20~30년 장기화하는 등 가계대출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가계들도 자산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통해 자신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리스크 관리를 위해 스스로 금융에 대한 이해력을 제고해야 한다.

박덕배 < 현대경제硏 전문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