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서울 여의도 우리투자증권 본사 세일즈트레이딩팀.해외 투자자 주식매매를 담당하는 이석경 차장이 유창한 영어로 외국인 고객들의 주문을 받았다. 이 차장은 "외국인 고객 가운데 초계함 침몰사건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매매 동향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 관한 중요한 이슈가 불거지면 관련 리포트를 구해 달라는 요구가 제법 있었지만 외국인들이 이번 사건을 큰 이슈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금융시장은 비교적 차분한 하루를 보냈다. 지난 주말 초계함 천안함의 침몰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요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었지만 기우로 끝났다. 이달 들어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4조8700억원의 순매수 행진을 이어갔고 채권시장도 큰 동요가 없었다. 원 · 달러 환율은 오히려 하락(원화가치 상승)했다. 일본 증시는 약보합세로 마감했지만 중국과 홍콩 증시는 2% 안팎 상승하며 '코리아 리스크'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외국인은 3200억원 주식 순매수

이날 코스피지수는 5.73포인트(0.34%) 내린 1691.99에 마감했다. 천안함 침몰로 투자심리가 움츠러든 탓에 지수는 개장과 함께 15포인트 이상 하락 출발했지만 서서히 낙폭을 회복해 장중 수차례 상승 전환하기도 했다. 개인과 기관의 순매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은 3277억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은 3월 들어 단 하루만 매도 우위를 보였을 뿐 줄곧 순매수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업종별로는 철강 운수장비 등 일부만 올랐고 건설(-1.95%) 증권(-1.70%) 통신(-1.32%) 등은 하락했다. 하지만 대형주 가운데 오른 종목도 많았다. 올해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하이닉스가 2.78% 올랐고 기아차(2.58%) 현대중공업(1.30%) 등도 강세였다.

김경덕 메릴린치증권 전무는 "초계함 침몰 원인이 불분명하긴 하지만 북한과 연계 가능성이 낮다는 보도가 나오자 외국인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라며 "자금 여유가 있는 해외펀드들은 한국 주식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경수 신영증권 연구원도 "초계함 이슈가 단기적인 투자심리 불안 요인은 되겠지만 추세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채권 · 외환 시장 동요 없어


채권시장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국내에 상장된 국고채 전체의 가격동향을 나타내는 KEBI(종합 국고채지수)는 이날 상승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개장 20분 만에 하락세로 방향을 틀어 전주말 대비 0.3081 하락한 104.7483에 거래를 마쳤다. 하락폭이 크지 않아 천안함 침몰의 파장은 거의 없었다는 평가다.

KEBI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국고채 금리는 오전 장에서 소폭 상승세를 유지하다 거래 마감을 앞두고 상승폭이 커졌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0.08%포인트 올랐고,5년물 금리는 0.11%포인트 상승했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막판 금리 상승은 천안함 사건보다는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취임사에서 대외 여건을 감안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할 것이란 소문이 돈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 주말까지 국채선물시장에서 이틀 연속 매도 우위를 보였던 외국인은 이날 6074억원 순매수,이번 사태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외환시장도 초계함 침몰사고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장 초반에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2~3원 높은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지면서 초계함 침몰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곧 수출업체들의 달러 매물이 나오면서 환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결국 전일보다 3원20전 하락한 1135원50전에 거래를 마쳤다.

초계함 침몰보다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지원안에 합의하면서 유로화가 상승한 것이 원 · 달러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월 경상수지가 소폭의 흑자로 돌아섰다는 소식도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침몰 사고에 북한이 관련돼 있는지 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환시장은 대북 악재에 둔감한 편이어서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해영/김동윤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