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대우증권 옵션 트레이더 김유나씨 "잠깐 한눈 팔면 원금 절반 날아가죠"
"언제 한번 점심이나 먹자."

직장인이라면 스스럼없이 나눌 만한 인사다. 하지만 "점심 먹자"는 게 "앞으로 보지 말자"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통하는 직업이 있다. 증권가 선물 · 옵션 트레이더다. 지수 등락에 따라 상대방의 돈을 따거나 돈을 잃는 시장.내가 살려면 상대의 팔을 비틀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 때에 컴퓨터 앞을 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2007년 10월부터 대우증권 선물 · 옵션 트레이딩룸에서 일하고 있는 김유나씨(30)는 입사 이래 한 번도 회사 밖에서 점심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아침에 구내 식당에 전화해서 주문하면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담긴 수레가 올라온다. 잡담은 꿈도 꿀 수 없다. 딜러들은 각자 책상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주문을 낸다.

30일 대우증권 트레이딩룸에서 김씨를 만났다. 트레이딩룸은 하루 수십억원이 오가는 전쟁터.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물을 적게 마시다보니 12명이 하루 10시간을 일하는데도 18.9ℓ짜리 생수통 하나로 사흘을 버틴다. 식탁 겸용이라는 책상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옵션 트레이더인 김씨는 검투사보다 만화 캐릭터를 닮았다.

▼주식하다 실패하면 선물,선물 실패하면 옵션,옵션마저 안 되면 '한강 다리'라고 들었습니다. 막장 도박판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파생시장은 무엇보다 정교한 리스크 관리를 토대로 장기간에 걸쳐 승부를 내는 시장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수 선물의 경우 한 번에 7배의 돈을 딸 수도 있지만 잃을 수도 있습니다. 옵션은 위험성이 더 크고요. 파생상품은 특성상 사전학습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투자자가 많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

▼선물보다 더 위험한 옵션을 맡게 된 이유가 뭡니까.

"옵션이 적성에 더 잘 맞았어요. 선물은 오르는 것 아니면 내리는 것에 걸어야 돼 선택지가 둘밖에 없는데 옵션은 훨씬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으니까요. 똑같이 시장이 오를 경우 '콜(싸게 살 수 있는 권리)'을 살 수도 있지만 '풋(비싸게 팔 권리)'을 매도할 수도 있거든요. 옵션은 또 매달 만기가 있어서 한 달이 지나면 전혀 새로운 시장이 시작된다는 점도 좋습니다. "

▼상당히 역동적인 시장 같은데요.

"그렇죠.수십초만에 전혀 다른 포지션을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은 전망을 한 시간 이상 갖고 가면 이 시장에서는 상당한 '장기투자'에 해당합니다. 통상 하루 300번 이상의 매수 · 매도를 내는 초단타 시장이에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죠.시간을 오래 끌면 수익도 크게 나지만 그 만큼 떨어질 때의 아픔도 크거든요.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개장(9시) 전까지 시장에 대한 관점을 정합니다. 언론 보도와 증권사 리서치 자료를 보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죠.생각은 나누지만 판단은 본인의 몫입니다. 오후 3시 5분 장이 끝날 때까지는 오로지 본인의 관점으로 매매를 진행합니다. 오전 9시 닛케이,10시 대만,10시15분 중국 선물,10시30분 상하이 증시,11시 항셍지수의 순으로 해외 시장도 계속 체크합니다. 그렇게 매매를 진행하고 오후 3시15분에 종가가 뜨면 그날의 성적표가 나옵니다. 누가 하루 동안 얼마나 잃고 땄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거죠."

▼하루에 얼마를 운용하십니까.

"트레이더의 실력에 따라 운용금액이 달라요. 손실액(하루에 손해볼 수 있는 금액)이 정해져 있어서 그에 맞게 일으킬 수 있는 레버리지의 크기와 운용금액의 규모가 나오는 거죠.하지만 구체적인 금액은 밝힐 수 없습니다. 외부의 '선수'들은 대략적인 운용금액을 듣고도 대우증권 전체의 선물 · 옵션 트레이딩 역량을 파악해 전략에 활용할 수 있거든요. "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사실 2004년에 외국계 제조업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관리직으로 3년 일했는데 하루하루가 지루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1년을 쉬다 대우증권의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선물 · 옵션 시장에는 인간 심리가 많이 개입되다보니 채용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

▼이 일의 장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다이내믹(dynamic)과 머니(money)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시장은 마치 새로운 퍼즐이나 퀴즈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순간 빠르게 판단하면서 시장의 본질에 접근해 가는 것이죠.자기가 성과를 거두는 만큼 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자만해선 안 되겠지만 실적에 따라 일개 사원이 임원급에 맞먹는 연봉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

▼원래 시장만큼이나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인가요.

"사실 저는 내성적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수다 떨기보다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런 점이 파생상품 시장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혼자 정신을 가다듬고 고민을 해야 하는 시간이 많거든요. 초 단위로 바뀌는 시장에서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평정심이 중요합니다. "

▼심리학을 전공한 게 실제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선물 · 옵션시장은 투자자를 종종 자기 파괴적인 수준으로 밀어놓곤 합니다. 포지션을 잘못 취한 상황에서 갑자기 손해가 급속도로 늘면 빨리 빠져나오기보다는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버티게 되는 거죠.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자살충동 이론'에 맞닿아 있기도 한 자기파괴적 감정입니다. 그런 감정에 빠질 때면 스스로 빨리 알아차릴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

▼회사 내 12명의 파생시장 딜러 중 홍일점이라고 들었습니다. 여자로서 강점이 있나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니다 싶으면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 좋은 것 같습니다. 수익보다 손절매가 중요한 시장이니까요. 하지만 직업환경이 거친 것도 사실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스스로에게 욕설을 내뱉는 건 예사거든요. "

▼인센티브가 있다지만 딴 돈을 회사에 거의 갖다 바치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회사가 제게 이런 기회와 공간을 줬으니까요. 내가 더 가져가고 싶다면 성과를 더 올리면 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파생상품으로 재테크 할 생각은 없습니다. 조직 내에 있기 때문에 수익을 내는 것이지 개인으로서 한다면 사실 자신 없어요. "

▼선물 · 옵션을 하다 망하는 사람의 유형이 있습니까.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시장은 절대 사람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아닌데 고집을 피우다 손실을 더 키우게 되는 거죠.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이 파생상품에 맞습니다. 손실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만회할 기회도 빨리 생기는 시장이거든요. "

▼손해 본 날엔 마음을 어떻게 추스릅니까.

"냉정하게 잘못한 점을 분석해보고 빨리 잊어버리려 합니다. 전 날의 손실이 다음 날의 매매 심리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니까요. 항상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자세로 살고자 합니다. "

▼옵션 딜러로서 포부가 있다면요.

"'투자가'가 되고 싶습니다. 60대까지 시장에 남아 트레이딩을 하며 위험 대비 수익이 많은 분야를 찾아내고 거기서 이익을 창출하고 싶어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시장을 찾아내는 눈을 갖고 싶습니다. "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