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다고 떠드는 것도 싫고,어떻게 하다보니 10년이 지난 걸 가지고 무슨 인터뷰입니까.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넘게 한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한국경제신문은 연중기획 '펀드로 저축합시다'를 위해 펀드 장기투자자 3명을 어렵게 인터뷰했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사진을 게재하지 않고 가명을 쓴다는 조건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1년 투자해 523% 수익률

대기업 임원을 지냈던 권영재씨(59)는 1999년 1월 현대증권의 한 지점에서 '프랭클린템플턴그로스5'에 3000만원을 투자했다. 지난 주말 계좌를 확인해보니 평가금액이 1억8500여만원(수익률 523%)에 이른다. 현대증권에서 출시 첫해부터 현재까지 이 펀드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는 17명.이 중 1000만원 이상 투자자는 단 4명에 불과하다.

요리연구가 김영숙씨(54 · 여)도 1999년 5월 가입한 '하나UBS퍼스트클래스에이스'를 통해 5000만원을 1억5900만원(수익률 218%)으로 불렸다. 연리로 따지면 19%가 넘는다. 7개 펀드에 5억원가량 투자 중인 그는 1989년 직접 주식투자에 나섰지만 투자한 회사가 부도나 원금 대부분을 까먹었다. 그 뒤 주식은 우량주나 펀드에만 투자한다는 자신만의 철칙을 세웠다.

부친의 유산을 물려받아 펀드에 총 5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전 출판사 직원 이현옥씨(55 · 여)는 '한국삼성그룹주펀드'에 2006년 9월부터 3년7개월째 매달 50만원씩(투자원금 총 2150만원) 적립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금의 27%까지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환매의 유혹'을 이겨냈다. 현재 평가액은 3015만원이다.

◆펀드는 묻어 두는 게 최고

먼저 장기투자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말을 아끼던 권씨는 외환위기 때 경험을 털어놓았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뒤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주식형 개인연금 저축을 해지했습니다. 이듬해인 1998년 6월 종합주가지수 280선마저 깨지자 동료들이 부러워했죠.하지만 잠깐이었습니다. 1998년 말 지수가 500선을 단숨에 회복했지요. 주식시장이 흔들려도 꾸준히 갖고 있는 게 최선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김씨도 '장기투자=성공투자'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펀드가 김장독이야? 왜 맨날 묻어만 두래'라는 광고가 있긴 하지만 제 생각엔 묻어두는 게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

두 사람 모두 고통의 시간도 많았다. 각각 1999년 펀드에 가입한 뒤 종합주가지수는 그해 연말 1000선까지 급등했지만 2001년 하반기엔 IT(정보기술) 버블 붕괴와 함께 500선까지 밀리면서 '펀드통(痛)'에 시달리기도 했다.

"해외에 나갔다오니까 펀드가 30% 넘게 깨져 있는 거예요. IMF 때 경험도 있었던 데다 여윳돈이어서 그냥 두면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죠."(권씨)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기다리면 증시가 회복된다는 걸 믿었죠.약간의 스트레스는 있었지만….(웃음)"(김씨)

권씨는 1년여가 지난 뒤 수익이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계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더욱 확신이 생겼다. 2003년에 주가가 다시 600선 아래로 밀렸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아들이 '한국은 앞으로 세계 4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말을 지도교수가 했다는 거예요. 저 역시 한국 경제를 믿었죠."(권씨)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이 조금 나면 환매하는 등 펀드에 가입했다 환매했다 하는 사람은 절대 큰 돈을 못 법니다. "(김씨)

적립식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이씨는 2000년 주식에 4000만원을 직접 투자해 불과 1년여 만에 반토막난 쓰라린 기억을 귀띔했다. "매번 주식을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랐죠.일반인이 주식이나 펀드를 살 시점을 제대로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기대수익률은 연 7~10%

3명 모두 기대수익률이 높지 않았다. 권씨는 연 10% 정도 복리면 족하다고 했다. 김씨도 연 7~8% 복리 수익률을 기대했다. 9년이 지나면 '더블'이 된다는 것이다. 이씨 역시 '적립식펀드가 은행 정기예금보단 훨씬 낫겠지'하는 생각으로 넣고 있단다.

권씨는 펀드에 묻어둔 지 11년째지만 아직 환매할 생각은 없다. 투자한 돈을 아들 결혼자금으로 쓸 생각이다. 아들이 아직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귀는 여자가 없어 1~2년은 더 보유할 계획이다.

펀드 이외에 1억원가량을 주식에 직접투자하는 김씨의 목표는 확실했다. "언제가 되든 코스피지수가 3000 근처에 가면 찾을 겁니다. 주가가 흔들리거나 말거나 상관 안 해요. "

김씨는 2007년 10월 4조원 넘게 몰린 '인사이트펀드'에도 투자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60% 넘게 까먹다가 반토막 수준까지 올라오니까 서둘러 환매하더군요. 전 그냥 들고 있죠.수익률이 아직 -20%를 기록하고 있지만 장기투자하면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씨는 업계에 대한 쓴소리도 던졌다. "펀드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이 그저 판매에만 급급한 직원들이 있어요. 그러니 불신이 쌓이는 거죠.펀드 장기투자가 정기예금보다 낫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제가 너무 잘난 척했나요?"

서정환/박민제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