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결혼식을 올린 김성호씨(34 · 서울 신사동)는 눈물을 머금고 하와이행 신혼여행을 포기했다. 두 달 전부터 항공 티켓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구하지 못해서다. 김씨는 오는 8일 이륙하는 항공편을 겨우 구했다. 이달 말 제주 여행을 계획 중인 이정명씨(37 · 서울 중계동)도 비슷한 경우다.

항공티켓이 증발해버렸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이달 예약률은 대부분 노선에서 90%에 육박할 정도다. 여행사의 5월 패키지상품 예약이 대부분 마감됐다. '빽'이 없으면 해외로 나갈 방법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원화 가치가 작년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환율 하락)한 데다 신종플루와 화산폭발 등으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경기 회복과 함께 한꺼번에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항공업계 즐거운 비명

3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동남아행 예약률은 93%에 달한다. 미주 유럽 일본도 86%로 작년에 비해 3~11%P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미주행 예상 탑승률이 90.4%이고 동남아 유럽 대양주 등의 탑승률도 80%를 웃돌 전망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올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올 1분기에 2조5990억원의 매출을 올려 회사 창립 이래 최대 실적(1분기 기준)을 기록했다.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회사 역사상 기네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항공업계에서 1분기는 비수기로 꼽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인 셈이다.

황명선 대한항공 한국지역본부장(상무)은 "작년이 워낙 안 좋았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유럽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 한국의 여행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하와이가 미국 무비자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여행지"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서둘러 증편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제주항공이 이달에 김포~제주,부산~제주 노선에 1만4500여석을 긴급 투입키로 한 것을 비롯해 대한항공 역시 일본 중국 동남아에 이달에만 왕복 178회의 부정기편을 운항하기로 했다.

◆여행사 '심봤다'

하나투어 정기윤 팀장에 따르면 예년 5월엔 가격할인 등의 마케팅을 했으나 올해는 안해도 된다고 한다. 손님이 저절로 몰려오기 때문.예약이 몰려 대부분의 패키지 상품이 마감된 상태다. 5월 예약자는 9만5000명이다. 전년 대비 66% 늘었다. 중국 일본 동남아 순으로 예약이 많다. 작년에 미미했던 유럽지역 성장률이 117%로 크다. 미주(77%)도 좋다. 환율이 떨어진 일본(94%)도 급증했다.

모두투어 남수현 팀장은 이달 예약인원이 5만5000명이라고 말했다. 전년 대비 83% 늘어난 수치다. 어린이날 주간 좌석은 남은 게 없다. 롯데관광 반종윤 팀장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늘어난 1만5000명이 예약한 상태라고 전했다. 역시 어린이날 주간에 출발하는 패키지상품 예약이 끝났다.

◆여행수지 1분기 20억달러 적자

여행수지가 4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여행수지는 19억90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해외 유학 · 연수가 11억4000만달러 적자,해외 관광이 8억5000만달러 적자였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5억1000만달러나 악화된 것이다. 이 같은 악화 폭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80년 이후 최대다.

여행수지가 계속 적자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원 · 달러 환율 하락 때문이다. 원 · 달러 평균 환율은 지난해 9월 1219원15전에서 올해 1월 1138원82전까지 내렸고 3월에는 1137원64전까지 떨어졌다. 이는 2008년 9월(1130원40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박동휘/김재일/주용석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