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것이다. 기억해라."

1988년 여름.중학생이던 한세희씨(34)는 평소 주식투자를 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생소한 선물을 받았다. 한씨 명의 계좌로 청약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 공모주 10주였다. 주식 개념이 없던 중학생은 할아버지가 주어서 받긴 했지만 곧 주식의 존재를 잊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8년 2월.서울대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한씨는 우연히 주가를 보게 됐다. 외환위기 사태로 곤두박질친 국내 주가가 반등하고 있었고 한씨는 문득 할아버지가 준 주식이 떠올랐다. '잘하면 대박을 낼 수 있겠다. ' 평범한 대학생이던 한씨 인생이 급반전하는 순간이었다.

12년 뒤인 2010년 현재 한씨는 주식시장의 '슈퍼개미'다. 최근 상장업체인 쌍용머티리얼 지분 6.08%(30억원)를 매수해 주목받은 그를 전화인터뷰했다. 보유주식이 100억원대에 이른다는 한씨는 아내와 함께 미국에 머물고 있다. 그는 대표적 진보성향 사회학자인 한상진 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아들이어서 화제다.

한씨는 1998년 2월 보유 중이던 포스코 10주와 저금한 돈을 털어 4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첫 투자에서 그는 나산 주식을 샀으나 매수 하루 만에 나산 부도로 150만원을 날렸다. 무지의 소치라고 생각한 그는 주식 입문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해 각종 대학생 투자대회에도 참가했다. 자신과 같은 개인투자자 모임에 끼어 노하우를 배웠다. 1999년 그는 현대증권 대학생투자대회에서 2등을 차지,아마 고수의 대열에 들었다.

이후 주식매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매크로머니란 회사가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 2000년 채용했다. 한씨는 이곳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한다. '투자수익 4000%'로 유명한 고수 권정태씨와 황성환씨(현 타임폴리오투자자문 대표)를 만난 것도 이곳에서였다. 한씨는 권씨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상한가 따라잡기(상따)' 투자기법을 확립했다. 상따는 큰 호재가 발표된 주식이 상한가에 들어갈 때 따라서 산 후 다음 날 시초가에 팔아서 상승폭만큼 수익을 내고,상한가가 깨지면 바로 손절매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따를 한 것은 아니다. 한씨는 주로 오전 9시에서 9시20분 사이에 상한가에 들어가거나 강한 테마가 부각되는 등 누가 봐도 상한가가 타당한 종목만을 공략했다. 한씨는 "2002년까지 2년 동안 30억원을 벌었다"며 "세상 부러울 게 없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쩐'(자금)이 두둑해진 한씨는 2002년 말부터 장기투자로 눈을 돌렸다. 저평가되고 안정성 있는 주식을 물색해 고른 것이 태광산업이었다. 주당 14만원에 1만주가량을 샀다. 하지만 귀신도 모르는 게 주가. 1년여 동안 주가는 오히려 1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는 그래도 2년을 기다렸다. 2004년부터 태광산업 주가가 급등했다. 2007~2008년 주당 80만원 선일 때 보유주식을 팔았다. 차익만 약 64억원이 났다. "장기투자는 엉덩이 질긴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이때 처음 배웠어요. 저평가된 주식은 결국 언젠가는 오른다는 거죠."

한씨는 "저평가 주식을 발굴할 때는 관심있는 업종에 있는 상장사들을 전부 다 분석한다"며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으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 추세인 기업들의 순위를 매겨 투자한다"고 말했다. 투자는 늘 리스크가 따른다는 말도 했다. 2008년 5억원을 들여 상장폐지된 플래닛82 주식 500만주(20%)를 샀으나 플래닛82의 패자부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투자하다 손해를 볼 때가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아이고,욕심이 화를 부르지…'라고 되뇌곤 한다"며 "주식투자에 있어 가장 큰 적은 탐욕이라는 말을 개미들한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