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환율이 외부환경 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이 잘 돼 있어 외국자본의 유출입이 손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정건전성이나 경제성장률 경상수지 등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관계없이 진행되는 환율의 급등락으로 국내기업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급격한 외국자본 유출입을 규제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역외 환율 1200원대로 급등

지난 20일(현지시간)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에서 원 · 달러 1개월 선물 환율은 1209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1200원대로 올라섰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의 현물환 종가 1194원10전보다 14원90전 오른 것이다. 장중 한때 124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석가탄신일'인 21일 문을 열지 않은 서울 외환시장이 개장했다면 원 · 달러 환율은 1200원 선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 가치와 전 세계 주가가 하락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원 · 달러 환율이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진우 NH투자선물 리서치센터장은 "환율 상승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다"며 "1250원까지는 간다고 봐야 하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원화는 주요 국가 통화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고 있다. 원 · 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 1108원40전에서 지난 20일 1194원10전으로 7.7% 올랐다. 원화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유로화 가치는 1유로당 1.3261달러에서 1.2392달러로 6.6% 하락했다. 이번 위기의 진원지이자 붕괴설마저 나도는 유로화보다도 원화의 가치 하락폭이 더 크다. 재정위기설이 나도는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도 달러 대비 6.1% 하락했지만 원화보다는 덜 떨어졌다. 엔화 가치는 거꾸로 2.5% 상승했다.

◆하반기 물가 상승 우려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하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커져 국내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유럽발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경우 전반적으로 소비 수요가 줄어 환율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선물환을 매도했던 기업들은 환차손을 입을 수 있다. 1분기 국내 기업들은 205억달러어치의 선물환을 매도했다. 4월 들어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가파르게 하락했고, 추가하락 전망이 우세했던 점을 감안하면 4월 한 달 동안 기업들의 선물환 매도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물가다. 환율 오름폭이 너무 커 소비자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아직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안정돼 있지만 하반기부터는 수입물가 상승의 영향이 소비자물가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 유출입 규제론 부상

외국인들은 5월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5조32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환시장에서도 안전성이 높은 달러 자산을 보유하려는 역외세력의 달러 매수와 본국 송금 수요가 환율 급등을 초래했다. 경제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외국인 자본의 유출입이 최근 환율 급등의 원인이었다.

정부도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응할 수 있는 개별 국가의 시스템 보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며 "거시감독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화 차입에 은행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문제는 환율제도를 바꾸거나 외국 자본 규제를 강화할 경우 대외 신인도 하락과 함께 정상적인 외화 조달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주요 20개국(G20)등 국제공조에 바탕을 두지 않은 별도의 규제 마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