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양해운 손 소장입니다. 오늘 남포항 출발하는 '동남1호' 출항 중지시키세요. 오늘부터 남한영해로 북한 국적 선박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급합니다. "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해상봉쇄,남북 교류 · 협력 중단' 등의 내용을 담은 천안함사태 관련 담화문을 발표하자 손보갑 국양해운 인천지점 소장은 급히 홍콩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날 담화문 발표사실을 모르고 오전 남포항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북한 선박 '동남1호'의 출항을 막기 위해서다.

국양해운은 지난 9년째 남한과 북한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정기화물선 '트레이드포춘(TRADE FORTUNE)'을 운영하고 있는 해운회사다.

"지난 9년 동안 인천~남포 간 뱃길은 단 한번도 막힌 적이 없어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을 때도 물건을 실어 날랐죠.이 바닷길이 막힌다면 남북관계는 정말 심각한 거죠."

손 소장은 이날 북한 선박에 물건을 실어보낼 예정이었던 홍콩선주에게서 '동남1호'가 출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심각하게 말했다.

인천~남포 항로는 바닷길을 이용한 서해 남북교역 창구다. 북한의 핵실험,대청해전(일명 서해교전) 등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살벌한 상황에서도 막히지 않았다. 북한 측도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 걸면서도 이 뱃길을 이용한 교역을 허용해 왔다. 2007년까지 부산과 나진항을 잇는 항로가 있었으나 수익성이 맞지 않아 닫힌 상태다.

업계에서는 인천~남포 항로를 단순한 남북교역 그 이상으로 인식해 왔다. 수차례 위기에도 우려와 달리 교역길이 막히지 않았고,그래서 남북 경색국면의 가늠자 역할을 해 온 게 사실이다.

인천~남포 항로는 장금상선의 계열사인 국양해운이 2002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트레이드포춘호는 매주 금요일 의류 원자재와 북한 구호물자 등을 싣고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들어간다. 남포항에서는 북한의 평양과 남포공단 등에서 생산한 의류 제품을 싣고 돌아온다. 삼성전자도 남포항 인근 남포공단에서 TV 등 전자제품을 조립해 들여오고 있다. 인천항에서 남포항까지 운항시간은 20여시간.

북한의 남포항으로 실어 나를 남한 기업의 화물을 위탁받아 운송하는 포워딩회사인 애니애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남북교역 중단을 선언한 만큼 전자제품을 만들 원재료나 원단을 보낼 수 없게 됐다"며 "남포~인천을 통해 교역을 해 온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고 우려했다.

정부도 급작스러운 남북교역 중단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25일 오전 10시 통일외교부에서 남북교역을 하고 있는 기업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최준호 국양해운 차장은 "통일부로부터 25일 간담회 일정을 통보받았다"며 "남북 간 교역을 하는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듣고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당분간 교역 중단에 따른 피해는 불가피해보인다"고 말했다.

한 북한전문가는 "남포공단은 개성공단만큼 정치적 상징성은 크지 않지만 교역 규모는 뒤지지 않는다"며 "북측도 이 루트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만큼 당황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