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무슨 마술을 부린 걸까. 애플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쳤다. 잡스가 부도 위기의 애플에 CEO로 복귀한 13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로 30년 이상 세계를 주름잡아온 '골리앗'이다.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쳤다는 것은 애플이 '테크놀로지 제왕'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26일 뉴욕 증시에서 종가 기준으로 2221억달러(278조원)를 기록,2192억달러에 그친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질렀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CEO에서 물러난 2000년 1월만 해도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5560억달러)는 애플(156억달러)의 35배에 달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반토막이 난 반면,애플의 시가총액은 14배로 뛰었다.

매출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게이츠가 CEO에서 물러난 2000 회계연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229억달러)이 애플의 3배였다. 2009 회계연도에도 마이크로소프트(584억달러)가 애플(429억달러)보다 36% 많았다. 그러나 2010 회계연도에는 마이크로소프트(617억달러)와 애플(590억달러)의 격차가 바짝 좁혀지고 다음 회계연도엔 애플이 앞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잡스가 CEO로 복귀한 1997년 애플은 망한 회사나 다름없었다. 컴퓨터 회사 델의 창업자 마이클 델은 "회사를 청산하고 주주들한테 나눠주는 편이 낫다"고 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애플은 이미 죽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잡스 자신은 복귀 후 병마에 시달렸다.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작년에는 간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잡스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애플을 세계 최고의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애플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추월하자 뉴욕타임스는 시대 변화를 배경으로 꼽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팅이 주로 데스크톱으로 이뤄지고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 테크놀로지 제왕에 올랐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이 보편화하고 모바일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확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마술(매직)을 부려 판을 뒤집은 셈이다.

애플의 '역전'과 잡스의 '매직'은 세 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2001년 내놓은 뮤직플레이어 아이팟이 첫 단계다. 당시 세계 디지털 음악 시장은 소니가 주도했고 뮤직플레이어 시장에서는 레인콤(아이리버)이 깃발을 날리고 있었다. 후발주자인 애플은 판을 바꾸는 전략을 썼다. 뮤직플레이어만 내놓지 않고 디지털 음악을 사고파는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장터)을 먼저 개설했다.

잡스는 음반업자와 소비자를 홀리는 '매직'을 발휘했다. 아이튠즈에서는 노래 한 곡을 99센트에 내려받게 했다. 싼 편은 아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노래까지 포함해 CD 1장을 10달러 가까이 주고 사는 것에 비하면 싸기 때문에 법을 어겨가며 복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불법 복제로 골머리를 앓던 음반업자들한테는 복음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세계 최대 음반유통 업자가 됐다.

잡스의 두 번째 매직은 2007년 펼쳐졌다. 잡스는 그해 7월 손가락 터치로 작동하는 아이폰을 내놓았다. 이 폰은 나오자마자 큰 호응을 얻었다.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 개발한 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에서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심통이 났는지 "손가락 터치로 작동하는 게 대수냐"느니 "터치로 따지면 초콜릿(LG)이 원조다"는 말까지 했다.

잡스의 매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애플은 이듬해 6월 아이폰 두 번째 모델을 내놓으며 앱스토어라는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장터를 오픈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필요한 관련 기술을 공개하고 누구든지 앱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팔면 매출의 70%를 갖게 했다. 그러자 전 세계 개발자들이 몰려들어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앱스토어는 기존 질서를 뒤엎는 혁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발자(개발사)나 콘텐츠 사업자는 이동통신회사와 휴대폰 메이커에 철저히 종속돼 있었다.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제법 돈을 버는 개발자도 있었지만,대부분 인건비를 건지는 데 급급했다. 앱스토어가 나오면서 개발자들은 해방됐고,아이폰 사용자들은 수만~수십만개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골라 쓸 수 있게 됐다.

따지고 보면 잡스의 매직은 단순하다. 협력사(파트너)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게 하고 소비자들이 환호하게 하는 방안이 전부다. 아이튠즈를 내놓았을 때는 음반업자들이 기꺼이 응했고 앱스토어를 열었을 때는 개발자들이 스스로 몰려들었다. 기존 질서는 철저한 갑을(甲乙)관계였다. 이동통신사나 휴대폰 메이커들은 '착취'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사 이익 위주로 파트너를 다뤘다.

잡스는 세 번째 매직을 시작했다. 지난달 발매한 태블릿 PC 아이패드가 그것이다. 아이패드 발매 전에는 비웃는 사람이 많았다. 잡스는 "마술 같고 혁명적인 디바이스"라고 강조했지만 사람들은 "아이폰을 4개 붙여 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런데 발매 28일 만에 판매대수 100만대를 돌파했다.

잡스가 매직을 펼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수를 연발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30년 동안 앉아서 장사했다. 세계 컴퓨터 운영체제(OS) 시장을 독점해 소비자를 알려고 고심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꿈 같은 방식을 모바일에서도 연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으로 대박을 터뜨리고,구글이 개방형 OS 안드로이드를 내놓으면서 빗나가고 말았다.

2007년 1월 발매한 윈도비스타는 끔찍한 실패작이었다. 속도가 빨라졌다,보안 기능을 강화했다고 온갖 자랑을 했지만 소비자들은 외면했다. "소비자를 무시하는 제품"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컴퓨터에 윈도비스타를 깔았다가 윈도XP로 다운그레이드 하는 소비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부랴부랴 윈도7을 내놓아 불을 껐지만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윈도와 오피스 말고 잘하는 게 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11월 윈도비스타를 대체할 윈도7을 내놓고 올해 윈도모바일을 대체할 윈도폰7을 내놓음으로써 오름세를 타고 있지만 이제는 쫓는 입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뒤처지자 CEO인 스티브 발머가 해명해야 한다고 썼다. 이 모든 변화가 발머가 CEO로 일한 지난 10년 동안 일어났기 때문이다. PC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이 신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단행한 부문별 인사로 되겠느냐며 경영진 교체까지 들먹였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