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국립미술관 5층 전시장.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야자수 한 그루가 전시장 가운데 대각선으로 누워 있다. 벽면에는 진흙과 석고,모래,머리카락,나무들이 혼합된 대형 콤바인 페인팅이 3줄로 걸려 있다. 마치 신전을 연상시킨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 안젤름 키퍼(64)의 최근 작 '휴일의 야자수'(사진) 프로젝트다. 작가가 약 1개월 동안 전시장 문을 닫고 치밀하게 설치한 이 작품은 강화섬유와 레진으로 캐스팅한 후 뿌리 부분에 진흙을 발라 실재 야자수 나무의 리얼리티를 한껏 살려냈다.

지난 3월10일 개막돼 8월1일까지 이어지는 키퍼의 개인전은 야자수를 매개로 한 새로운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을 소재로 활용하며 종교와 신화,생명과 죽음,선과 악,자연과 문명 등 상반된 개념을 하나로 결합시켜 시간의 영속성을 표현해왔다.

1945년 구 동독 지역인 도나우싱겐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바젤리츠와 함께 독일 대표로 참여하면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뉴욕현대미술관과 베를린국립미술관,런던왕립아카데미,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차례로 개인전을 열어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2008년에는 앙리 마티스 이후 현존 작가로는 최초로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높이 14m의 초대형 작품을 설치해 주목받았다.

그는 왜 야자수를 작품 소재로 선택했을까. 쓰러진 야자수는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어떤 곳,유럽을 난도질한 전쟁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폭력과 전쟁의 희생자인 유대인들과 함께 위정자 한 사람의 잘못된 욕망과 판단 때문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희생자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까지 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것은 그의 철학적인 태도와 독일을 떠나 프랑스 바르자크에 살면서 고향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적어 내려가는 그의 작업은 그런 점에서 메타역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서사 구조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이며,역사의 주체는 절대권력을 가진 위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페인팅과 설치가 상호 대립과 조화를 함께 이루는 묘한 분위기도 그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윤회적 생사관을 바탕으로 죽음과 재탄생을 균일하게 다뤄냄으로써 그의 은둔자적 삶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한다.

많은 미술사가와 큐레이터,미학자들이 이미 역사와 미술사에 등재됐다고 확신할 만큼 그의 작품 내용과 미학적 가치는 남다른 자리에 도달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무명,익명의 삶들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일상사적 관점을 유지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한없이 작아지지만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이렇게 맞은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삶의 고통이 정지되는 탓에 한없는 평안과 위안이 된다. 하지만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의 언어가 훨씬 더 다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을 맞는 사람들,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 또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미술로 치유하고자 하는 그의 '같으면서 다른' 차이와 울림이 누워있는 야자수 나무의 잎 사이를 스치며 지나간다.

토론토(캐나다)=정준모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