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모씨(35)는 2002년 경기 성남시의 한 상가건물에서 점포를 분양받고 다음 해 태권도장을 열었다. 채모씨(42)도 같은 건물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할 생각으로 점포를 얻었다. 그런데 학원 운영이 여의치 않다고 여긴 채씨는 다른 사람에게 점포를 빌려줘 또 다른 태권도장을 운영하게 했다. 한 상가건물에 태권도장이 2개 있게 된 셈이다.

이에 민씨는 "채씨의 업종제한약정 위반으로 1억원대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반면 채씨는 "보습학원 용도로 업종을 제한하는 약정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민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건축회사가 상가의 점포별로 업종을 지정해 분양한 경우,수분양자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호 간 업종제한 의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며 상호 간 업종제한에 관한 약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민씨와 채씨 등 수분양자들이 작성한 상가 공급계약서에는 '분양계획(광고)에 따라 상가를 특정 용도로 지정 · 분양하나,용도를 지정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예외'라는 항목이 있었고,그 바로 밑에 해당 점포의 용도를 기입하는 공란이 있었다. 민씨와 채씨 모두 이 공란을 채우지는 않았다. 대신 분양 업무를 대행한 직원은 계약서 다른 면 하단에 민씨에게는 '본 건물 내 태권도 같은 업종 신규분양치 않음'이라고 적어줬다. 채씨에게는 다른 면 상단에 '보습학원'이라는 문구를 기재해줬다. 이를 근거로 채씨는 "계약서에 기재된 업종은 권장업종에 불과하며 영업제한의무가 있다고 명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용도 기입용 공란이 비어 있다 해도,다른 면 여백에 용도가 적혀 있으면 수분양자들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보습학원'이라는 문구가 계약서에 기재됐다면 그 업종에 대한 독점적 이익을 보장받는 대신 다른 수분양자의 독점적 이익도 지켜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