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5일 부산에서 열렸던 G20(주요 20개국)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한국으로선 글로벌 리더십을 테스트받는 중요한 시험무대였다. 우리가 신흥국가로서는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기로 결정된 때부터 국제사회는 과연 한국이 민감한 세계의 핫 이슈들을 조율하고 처리할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봐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부산 회의에서 선진국과 신흥국, 미국과 유럽 간 의견 차이가 큰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과 은행세 등 주요 의제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끌어낸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논리를 개발해 회원국들을 설득,합의를 도출했다는 것은 한국의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의장국으로서 할 일을 하면서도 외환시장 안전장치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겼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회의를 주재하는 만큼 자칫 체면지키기에만 연연하기 쉬운데도 단기 해외자금의 유출입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 해소가 시급한 우리 입장을 당당하게 관철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을 보여주는 결과다. 지난 4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한탄했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회의가 끝난 후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자부심을 피력한 것은 비로소 국제사회의 인증을 받았다는 안도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을 반영한 표현에 다름아니다.

국제사회의 흐름을 따라잡고 여론을 리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인 데다 금융선진국도 아니어서 핵심에서 비켜서 있는 처지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문제는 글로벌 룰과 그 조건, 영향 등을 숙고하지 않고 막연히 트렌드만 따라가서는 낭패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과거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가 불과 1년 뒤 외환위기에 처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로 들어갔던 것은 우리 지식부족의 소산임이 분명하다. 선진국클럽에 들어간다는 명분에 취해 우리 기업과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먼저 보강해야 하는 전제조건을 모른 채 금융시장 개방을 서두르고 개방폭도 일찍 확대했던 때문이다. 최근 유럽식 국제회계기준(IFRS)을 서둘러 도입하는 바람에 2013년 다시 새 기준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도 미국과 유럽이 기준을 통합하는 논의를 진작부터 하고 있었던 흐름을 놓쳤던 데서 빚어진 일이다.

아무리 부산회의를 잘 치렀더라도, 이번 합의가 구체화돼 오는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코리아 이니셔티브'에 담기려면 이달 26~27일 캐나다 밴쿠버 G20 정상회의 말고도 10월 워싱턴과 경주에서 각각 열리는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거쳐야 한다. 이 사이에 어떤 예기치 못한 변수와 새로운 이슈가 불거질지 모를 일이니 흐름의 변화를 주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수준이 OECD 30개국 가운데 꼴찌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7~8년이 걸릴 것이란 조사결과도 제시했다. 한국이 OECD 개발원조위원회(ODA)에 가입함으로써 과거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지위가 올라가는 등 국격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글로벌 리더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