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산 섬유 유연제인 '피죤'이 나온 시점은 1978년이었지만,1980년대 중반까지 피죤을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영업사원이 슈퍼마켓을 찾아가 "피죤이 정전기를 방지해준다"고 설명하면,한국전력에서 나온 사람으로 착각한 주인이 두꺼비집을 열어줄 정도였다. 빨랫비누 하나면 충분했던 당시 주부들에게 섬유 유연제는 '불필요한 사치품'일 뿐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3저(低) 호황'과 '올림픽 효과' 덕분에 한국경제가 순풍에 돛 단 듯이 뻗어나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섬유 유연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때 시장을 장악한 피죤은 유니레버 LG생활건강 등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50%가 넘는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피죤이 9일 중국 톈진 빈하이신구 5만952㎡ 부지에 대규모 공장을 세운 것은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이 1980년대 후반 한국과 비슷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준공식에 참석한 이윤재 피죤 회장은 "2004년 1200억원 안팎이던 중국 섬유 유연제 시장은 지난해 2720억원으로 확대됐고 액체 세제시장도 같은 기간 2배 이상 커졌다"며 "중국 소비자들이 고급 생활용품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날 부분 개장한 중국공장 생산 규모는 2만5000t 수준.피죤은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생산 규모를 50만t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는 3.1㎏들이 피죤이나 '액츠'(액체세제 브랜드)를 연간 1억7000개나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피죤의 한국 진천공장 생산 규모가 연간 20만t 수준임을 감안하면 2.5배나 큰 공장이다.

피죤의 목표는 2014년까지 중국에서만 1조원 매출을 올리는 것.지난해 피죤 매출이 2000억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이 회장은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지만,아직 시장을 장악한 업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피죤은 이를 위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향과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 현지 사정에 맞게 제품을 변경하는 동시에 조만간 TV광고도 내보내기로 했다. 또 피죤 브랜드를 '한국에서 온 세척전문가'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한류(韓流)' 열풍도 활용키로 했다. 아울러 톈진공장 가동을 계기로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북부지역은 물론 상하이 등 남부지역까지 제품 판매지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 회장의 장녀인 이주연 부회장은 "피죤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활용품 업계의 삼성전자'가 되는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중국 생산기지를 앞세워 세계로 나갔듯이 피죤도 중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와 러시아로 무대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죤의 증시 상장 계획에 대해선 "최근 하나대투증권과 주관사 선정 양해각서(MOU)를 맺었다"며 "지금은 시장 상황이 불안정한 만큼 내년에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톈진(중국)=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