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공동체(EU)의 경제위기가 쉽게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4단계 떨어진 가운데 경제난이 동유럽으로 번지고 있다. 회원국 간에 갈등이 증폭되는 한편 기축통화 지위를 넘보던 유로화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이 되겠다던 계획이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EU가 처한 위기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주장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미국 예일대의 폴 케네디 교수는 강대국의 성쇠는 대외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그는 미 · 소 냉전 종식 직전에 출간된 《초강대국의 흥망》에서 강국의 국운이 기우는 이유는 '과도한 대외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합스부르크 제국,대영제국 등 세계를 호령하던 초강대국들이 쇠락하게 된 것은 이들이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을 남용하고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했던 탓이라고 꼬집었다. 국방비를 줄이지 않을 경우 소련과 미국도 쇠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비해 메릴랜드대의 맨커 올슨 교수는 국내 정책의 중요성에 중점을 두었다. 《국가의 흥망》과 《국력과 번영》을 통해 그는 재산권을 보장해주는 시장경제 체제가 번영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민주주의의 숨은 해악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렸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부의 창출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이익집단들이 늘어나게 되고 정치인들은 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책을 남발해서 나라 경제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EU의 위기는 케네디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EU는 국방비를 과다하게 사용하기는커녕 최소 수준으로 유지했다. 2008년 현재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평균은 1.7%에 그쳤다. 회원국의 국방비 총액은 미국 국방비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EU는 1993년에 창설된 이래 단 한 번도 대규모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을 하거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 1990년대 말 코소보 내전과 2000년대 초 테러와의 전쟁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 것이 전부였다.

EU 위기는 올슨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였다. EU 멤버들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과도한 복지 정책을 추구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하기 이전에도 GDP 성장률이 1%대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고 실업수당을 인상하는 등 복지 혜택을 대폭 늘렸다. 재정적자가 하늘을 찔렀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에 취약하게 됐다. 사회안전망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시행한 정책이 사회의 안정을 뒤흔든 것이다.

EU의 사례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첨예한 안보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방비를 줄여왔다. GDP 대비 국방비는 2%대까지 떨어졌다. 성장률은 개선될 줄 모른다. 이제는 4%대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워보인다. 반면 복지 정책은 빠르게 늘고 있다. GDP 대비 복지 재정의 비율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복지 재정 지출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출은 2002년에서 2007년 사이 연평균 10.1%가 늘었다.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될 듯하다. 지방 선거에서 참패를 한 여당은 7월 재보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 보따리를 풀려 한다. 야당도 전원 무상급식과 같은 '통큰' 복지 정책에 올인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대열에 동참하기도 전에 EU의 전철을 밟게 될 우려가 높다.

여야 정치인들이 올슨의 경고를 되새길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사회 통합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복지 정책의 두 얼굴을 직시하고 정책 집행 방법과 도입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