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2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전세로 살 이유가 없지요. 전셋값이 싸진 용인으로 이사가는 것 외엔 달리 선택이 없어요. "(잠실 E아파트 세입자)

"2년 전 입주 때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싸게 전세를 줬지만 이제는 시세대로 받아야지요. 지금 세입자가 집을 깨끗하게 사용해서 재계약하고 싶지만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세입자를 찾아야지요. "(잠실 R아파트 주인 송모씨)

서울 잠실재건축 단지와 동탄신도시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세입자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2년 전 입주 때 싸게 세를 놨던 집주인들이 시세만큼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하자 재계약을 포기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 계약포기 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셋값도 하락했다.

◆잠실 · 동탄 등의 세입자 '엑소더스'

20일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서울 송파구 잠실리센츠(5563채)의 109㎡형 전셋값은 3억7000만~4억원대다. 2008년 7월 입주 당시 2억3000만원 선이었다가 그해 연말 2억원을 밑돌기도 했던 것과 비교하면 2억원가량 오른 셈이다.

2008년 전국에서 입주물량이 가장 많았던 화성시도 세입자들의 전셋값 부담이 커졌다. 능동 신일해피트리 81㎡는 8000만~9000만원에서 1억5000만~1억60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2년 전 입주 당시 전세를 얻은 세입자들은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잠실 K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시세대로 줘야 재계약하겠다고 하자 모자라는 전세대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대거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자란 전세대금 월세로 전환

전세대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입주물량이 쏟아져 전셋값이 싼 서울 미아뉴타운,용인,고양 등으로 옮겨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달 입주를 시작한 힐스테이트와 자이 단지가 있는 용인 성복지구의 S공인 대표는 "매매는 거의 없지만 전세물건은 나오는 즉시 소화된다"며 "서울 잠실에 살던 젊은 부부들이 많고 100㎡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자녀교육이나 출퇴근 등으로 재계약이 불가피한 세입자들은 전 · 월세 교환 기준(보증금 1000만원당 월세 10만원)보다 약간 낮게 월세로 바꾸고 있다. 잠실은 보증금 1000만원당 월세 7만원씩으로 계산하고, 수원에선 2년 전 전셋값을 토대로 월세로 바꿔주고 있다. 오른 만큼을 월세로 바꾸는 사례도 등장했다.

◆계약포기 물량 늘어 전셋값도 하락

재계약 포기 세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잠실 재건축 단지 전셋값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매머드급 대단지인 리센츠의 109㎡형 전셋값은 4억~4억2000만원으로 지난 4월 최고가 대비 4000만~6000만원 하락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리센츠는 입주 첫 해인 2008년 말 3.3㎡ 당 전셋값이 833만원이었으나 올 4월에는 1317만원까지 뛰었다. 그러나 전세 재계약 포기자들이 늘면서 이달 들어 1241만원으로 5.7% 떨어졌다.

부동산업계는 잠실 재건축 단지 전셋값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잠실지역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109㎡ 아파트의 경우 지난 4월 최고가와 비교해 1억5000만원 이상 떨어지지 않는 한 기존 세입자들이 재계약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전셋값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후/이승우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