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나이지리아의 2010 남아공월드컵 B조 예선 마지막 경기가 있던 23일 새벽.졸린 눈을 비벼가며 중계방송을 보던 A씨는 웃지 못할 경험을 했다. 후반전 초반 박주영 선수가 프리킥 기회를 잡자 그는 왠지 박주영 선수가 일을 내고 말 것 같은 예감에 숨을 죽여가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와!'하는 함성 소리가 아파트 곳곳에서 터져나오며 김이 새고 말았다. A씨 집의 TV에선 공이 아직 발 끝에서 떠나기도 전인데 옆집 TV에선 이미 골이 들어가 먼저 함성을 지른 것이었다. 역전골의 감격을 1초 정도 늦게 경험해야 했던 A씨는 맥이 빠져 더이상 TV를 볼 의욕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날 새벽 중계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이처럼 골 장면에서 집집마다 함성소리가 시간차로 울리는 현상을 경험했다. 어떤 집에서는 아직 프리킥을 쏘기 전인데 어떤 집에서는 이미 골이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는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진 데 따른 것이다. 전송방식과 전파신호의 기술적인 차이에 따라 방송의 시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송방식이 같다고 해도 어떤 송출장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월드컵 중계를 즐길 수 있는 매체로는 지상파 방송,아날로그 · 디지털 케이블방송,인터넷TV(IPTV),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인터넷 생중계 등이 있다.

방송전문가에 따르면 스포츠 생중계의 경우 전파송출 속도는 지상파방송,아날로그 케이블TV,디지털 케이블TV,지상파 DMB,위성DMB 순으로 빠르다. 지상파 방송사가 송출한 전파를 직접 안테나로 수신하는 가구가 가장 빠른 화면을 볼 수 있고,아주 미세한 차이로 아날로그 케이블방송이 뒤를 잇는다. 지상파방송에 비해 디지털은 1초,지상파DMB와 위성DMB는 각각 2~3초와 5~6초 차이가 난다. 아날로그방식이 화질은 떨어지지만 스포츠 중계에선 디지털 케이블방송보다 나은 셈이다.

디지털의 경우 방송화면을 압축해 전달한 뒤 다시 푸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간차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수신하는 TV에서는 디지털 방식으로 수신하는 TV보다 그만큼 앞서 진행된 경기내용을 시청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강신영 CJ헬로비전 과장은 "디지털 케이블이 아날로그 케이블에 비해 늦기는 하지만 1초 이내로 시청자가 큰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며 "다만 시청자들이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이 같은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TU미디어 위성DMB기술본부의 박한진 매니저는 "디지털 전환 때 쓰는 인코딩기술과 셋톱박스에서 풀어내는 디코딩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초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하는 IPTV는 디지털 케이블보다도 약간 더 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별로 네트워크 사정에 따라 지연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위성방송도 케이블방송에 비해 느리다. 현지에서 전파를 위성으로 쏘아올려 각 가정으로 전달하는 데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날 중계에선 이 같은 이유로 인해 같은 집에서 각자 TV를 본 식구끼리도 전파격차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인터넷 포털에서 제공한 실시간 중계는 시간차는 있지만 같은 시간에 열린 다른 팀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