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호서대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한 임종호씨(29)는 싱가포르의 글로벌 기업 두 군데로부터 취업 통보를 받았다. 영국계 취업 알선업체인 JAC리크루트에서 연봉 3만싱가포르달러(한화 2500만원) 조건으로 근무하고 있다. 올해 건양대 영문과를 졸업한 박소정씨(23)는 싱가포르에 진출한 쌍용건설 현지법인에 입사했고,중앙대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한 김소령씨(26)는 싱가포르의 교육 지원업체인 케임브리지 인스티튜트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펙'이 취약했다는 점.토익 점수가 990점 만점에 590점에 불과했던 임씨의 경우 한국 여러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지만 서류전형을 통과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지방대 콤플렉스 '훌훌'

싱가포르 기업들의 특징은 신입사원을 수시 채용한다는 점이다. 고용시장이 유연한 이곳에선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찾아 직장을 옮겨다니는 게 관행이다. 갑작스레 일손이 부족해지는 싱가포르 기업은 학벌이나 토익 점수가 아니라 순발력과 적극적인 업무처리 태도를 따져 빈 자리를 수시로 충원한다.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자신감 있게 영어를 구사하고,도전정신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해외 취업에 도전하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싱가포르가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이유다.

임종호씨가 싱가포르에 온 것은 지난해 4월 취업연수 프로그램(8개월짜리)을 밟기 위해서였다. 연수 6개월 차인 9월에 세계적 컨벤션 이벤트 업체인 영국계 마커스 에반스로부터 신입사원 합격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그는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이력서 작성법,면접요령 등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임씨는 "싱가포르에서 많은 일을 배우고 있다"며 "오는 10월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 원(F1) 행사에 한국 대기업 CEO들의 참석을 권유했던 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와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기업의 마케팅 기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이 회사에서 세일즈 트레이닝을 받고 나면 대기업 총수라도 전화를 받게끔 만드는 기술을 터득한다"며 "신입사원 업무훈련을 받고 나면 적극적이고 철두철미한 업무처리가 몸에 배게 된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업


쌍용건설 싱가포르 법인에 취업한 박소정씨는 "현지 채용인 신분으로 입사해 한국에서 파견나온 주재원들보다 대우가 다소 낮은 편이지만 불만은 전혀 없다"며 "외국 경험도 하고 일도 배우면서 스펙을 보완해 나가면 국내에서 취업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둔 지난해 8월 한국에 남아 취업을 준비할지,싱가포르 취업연수를 떠날지를 놓고 망설였다. 한국에 남아 있자니 취업이 안 될 것 같고,외국에 나가자니 막연한 두려움이 들어서였다. 그런 와중에 학교와 대전시에서 체류비를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싱가포르행(行)을 결심했다. 건양대는 졸업반 학생이 해외취업연수에 참가할 경우 연수 기간 중 대전시 지원금 300만원을 포함,모두 500만원을 제공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지원하는 400만원은 연수기관으로 직접 전달돼 강사비,사무실 임대료 등 운영비로 사용된다. 박씨가 일하는 곳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마리나베이샌즈호텔 건설현장이다.

◆영어에 중국어도 잘하면 최고


케임브리지 인스티튜트에 취업한 김소령씨는 공립 초등학교 교사를 원했지만,외국인 신분이어서 여의치 않자 중간 기착지로 이곳을 택했다. 케임브리지 인스티튜트는 미국 뉴질랜드 등 외국 대학과 학점연계사업을 하는 기관이다. 대학 1학년 또는 2학년 과정의 학점을 인정해주는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할 경우 케임브리지와 연계된 미국 뉴질랜드 등의 대학에 2학년 또는 3학년으로 편입하는 식이다.

이곳엔 뉴질랜드에 가려는 중국 학생들이 특히 많이 몰린다.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을 받기가 까다로운 이들은 싱가포르 학점인정기관을 거치면 바로 비자가 발급된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선 중국어와 영어에 둘 다 능통하면 대환영이다. 김씨는 중국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는 데다 영어도 잘해 입사원서를 내자마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싱가포르=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