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인류 '바링허우'] 이념보다 실리…'2억4000만 뉴 파워' 中 사회변혁 주체로
최근 중국사회를 뒤흔든 연쇄파업을 역으로 추적하면 탄궈청이란 24살 젊은이에 도달한다. 그는 연쇄파업의 시작점인 혼다자동차 광둥성 포산 부품공장의 파업을 주동했다. 그와 함께 생산라인을 세워버린 노동자의 90%도 20대 젊은이들이다. "바링허우(80後 · 1980년 이후 출생자)의 파업"(홍콩 현대중국연구소 천밍난 연구원)이라고 할 만하다.

중국의 신(新)인류인 바링허우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며 파업을 벌일 정도로 대담하지만,부모로부터 독립하기를 거부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월급을 몽땅 물건사는데 쓸 정도로 소비지향적이면서,스스로를 집과 카드의 노예라고 자조한다. 기업들이 바링허우 관리방법을 연구해야할 정도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까르푸를 일시에 무력화 시킨데서 볼 수 있듯이 민족주의적 정서 또한 강하다. '올해 30살이 된 바링허우는 이립(而立)이 아닌 난립(難立)'이라는 난방일보의 보도는 이런 복합적인 성격을 지적한 것이다. "이번 파업은 중국에 2억4000만명의 다중인격체가 사회의 주체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것"(홍콩 현대중국연구소 천 연구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문혁(文革)과 소황제

[중국의 신인류 '바링허우'] 이념보다 실리…'2억4000만 뉴 파워' 中 사회변혁 주체로
바링허우는 문화혁명을 거친 아버지 세대와 성장배경부터 다르다. 바링허우의 아버지세대는 고통스런 공산혁명과 1000만명이 희생당한 문화혁명을 경험하며 가난의 극복보다는 이념이 우선했던 '집단적 광기'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바링허우는 △개혁개방으로 경제발전이 본격화된 뒤 태어나 자랐고 △'한가정 한자녀' 정책에 따른 독생(獨生)자이며 △현대화된 교육시스템의 혜택을 처음 받은 세대다.

샤오황디(小皇帝)라고 불릴 정도로 부모에게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이들은 "빈부격차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진보하고 있다는 것"(린이푸 세계은행 부총재)이라는 부모 세대의 인식을 수용하지 못한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리씨는 "이들은 빈부격차를 사회의 발전에 따른 부산물로 받아들이지도,사회적 정의차원에서 인식하는 것도 아니며 단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노동자 연쇄 자살사건이 발생한 폭스콘이 지난 1996년 선전에 공장 문을 열었을 때 만해도 이곳은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다. 하루 세끼 식사가 제공되고,임금체불이 없는 폭스콘은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쇄자살한 13명이 모두 20대인데서 알수 있듯이 바링허우에겐 지옥이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폭스콘 노동자의 말을 인용,"기본급이 적기 때문에 잔업수당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일만해야 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자는 것과 일하는 것 두가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일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임금의 많고 적음은 물론 삶의 질을 따지는 게 바링허우의 특징이다.

◆다중인격체

샤오황디와 함께 바링허우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말은 웨광주(月光族)이다. 월급을 받자마자 다 써버린다는 뜻이다. 바링허우는 중국 소비시장의 핵심으로 꼽힐 만큼 소비성향이 높다. 중국 경제일보에 따르면 인터넷쇼핑 이용자의 48.5%가 20대다. 독자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었던 습관이 소비성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관영 신화통신은 카드연체자의 대부분이 20대라고 지적하며 무분별한 카드발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후베이대 인구학과 장즈민 교수는 "바링허우의 절제하지 못하는 소비습관과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의 문화가 합쳐지면서 과소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의 노예(房奴), 차의 노예(車奴) 등 바링허우 스스로 자조하는 말들이 생겨나는 이유다. 중국의 포털사이트 신랑이 20대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중 40%는 부모로부터 독립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경제적 지원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철부지들만은 아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자존심을 건드리자 프랑스의 유통체인점인 까르푸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파업사태에서 보듯이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에는 집단적 단결력도 과시한다. 후베이대 장 교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자존심 역시 세고, 쉽게 좌절하지만 열정도 있는 다중 성격의 세대"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풍속도

기업들은 바링허우의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관리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바링허우 신입사원은 당황스러운 존재다. 정시에 퇴근한 비서에게 자신이 퇴근하기 전까지 자리를 뜨지 말라는 경고를 했던 어느 기업체 회장이 중국 인터넷에 비난을 받는 일도 발생했다. 이 비서가 '회장의 지시가 부당하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던 것.생산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월급의 많고 적음만을 따졌으나 복리대우를 꼼꼼히 챙긴다.

광둥성에서 기계조립업체를 운영하는 김치형 한미실업 사장은 "젊은 직원들은 이직률이 높고 공장 안에서도 복지시설 등 원하는 게 많다"며 "그렇지만 어렵고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해 관리하기 무척 까다롭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삼성경제연구소는 "바링허우 세대 직장인들은 강한 개인주의를 갖고 있으며,직장 안에서도 개인의 성향과 취미 등을 중시하는 반면 권위와 제도의식이 약하고 자신의 자유를 단속하는 데 대해 매우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졸업후 직장을 갖지 못한 가난한 청년들을 말하는 '이주(蟻族,개미족)',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혼을 미루는 '쿵훈주(恐婚族)'등이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올초 최근 2년간 이혼한 부부의 절반이 바링허우란 통계가 발표됐다. 이중 20%는 돈을 벌지 않고 인터넷 게임만 하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다. 쓰촨성에선 바링허우의 부인들이 '모소우(魔手,인터넷 게임) 반대 연맹'까지 결성하기도 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