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2일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고통을 요구했다"며 "덜 고통스런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스트로스 칸 총재는 이날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컨퍼런스'(기획재정부 · IMF 공동주최)에 참석,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IMF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요구했던 고강도 긴축 처방이 옳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스트로스 칸 총재는 "아시아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견뎌내는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IMF 주도의 과감한 구조조정 덕분이라는 시각이 있는 데 이는 한쪽 측면만 보는 것"이라며 "돌이켜보면 IMF는 아시아 국가들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고통을 요구했고 뒤늦게 덜 고통스런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IMF 총재가 외환위기 당시 취했던 고금리 · 고강도 재정긴축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한국은 회복 속도가 빨라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라며 "금리인상 타이밍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또 "실질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 간 갭(격차)이 줄어 한은이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주요 의제인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과 관련,"지난 60년 동안 IMF가 취했던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라며 "기존 프로그램이 위기 후 사후 수습에 주안점을 뒀다면 새로운 프로그램은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트로스 칸 총재는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으로 자본유입 확대와 유럽 경기회복 지연을 꼽았다. 그는 "유럽 경제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 경제가 둔화될 경우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럽 위기로 전 세계 유동성이 유럽 등에 대한 투자보다 아시아 신흥국 투자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며 "이에 따라 막대한 자본유입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트로스 칸 총재는 은행세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세계 4대 금융중심지 가운데 일본을 제외한 미국 영국 유로존 등 3곳이 은행세 도입에 긍정적 입장인 만큼 물건너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IMF가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금융안정기금에 2500억유로를 출연키로 했는데 이는 전체 지원액의 3분의 1정도"라며 "아시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유럽에서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원에 함께 나서는 다른 주체가 나타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며 "아시아 역내 안전망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가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