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영업] "하루 15시간 일해도 강남·홍대앞 빼면 10곳 중 7곳 적자"
서울 종로구 명륜동과 혜화동 일대는 서울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중산층 주민이 많은 곳이다. 혜화동로터리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1차로에는 자영업소가 즐비해 1970~1980년대 골목상권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일 이 도로 양쪽에는 슈퍼마켓 부동산중개소 양품점 화장품점 꽃집 이용원 등의 간판을 단 10여곳이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줄잡아 200여m인 이 거리엔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매장을 임대용 원룸으로 바꾸기 위한 공사가 한창인 건물도 눈에 띄었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닥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기업형슈퍼마켓(SSM) 두 곳이 지난해 이후 잇달아 문을 열면서 자영업소들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중개소 인테리어 이삿짐센터 등 관련 업소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문닫는 자영업소 속출

식료품가게를 운영하다가 지난달 문을 닫은 점주 K씨는 "SSM이 들어오면서 손님을 뺏겨 인건비는커녕 임대료도 벌기 어려워 고민하다가 문을 닫았다"며 업종 전환을 검토 중이라고 한숨지었다.

서울 강남과 홍대앞 등 일부 핵심 상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골목상권 상황은 비슷하다. 서민층이 많은 변두리 재래상권은 더 심각하다. 업종별로는 자영업소의 70~80%를 차지하는 식당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먹골역 인근에서 삼겹살전문점 '돈굽는마을'을 운영하는 이민정씨는 부인과 함께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지만 매월 적자를 내고 있다. 한 달에 두 번만 쉬고 땀 흘려 일하지만 월 매출이 500만원도 안된다. 식자재비와 임대료 125만원을 내면 손에 쥐는 돈이 없다. 이씨는 "역세권이라 장사가 잘될 것으로 믿고 2007년 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문을 열었는데 빚만 늘어나고 있다"며 폐점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쌍문동에서 치킨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순 점주도 요즘 잠을 설치고 있다. 박씨는 "식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지만 이웃 가게와의 경쟁으로 판매가를 올리지 못해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미아동에서 쇠고기전문점을 운영하는 홍애경 점주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자영업 컨설턴트인 최재봉 연합창업컨설팅소장은 "지방에 비해 경기가 그나마 좋다고 하는 서울의 자영업소도 10곳 중 6~7곳은 사실상 적자 점포로 보면 된다"며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고 중상층은 대형 유통업소로 발길을 돌려 자영업소의 도태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재희 한경자영업지원단장은 "자영업자들도 비용을 절감하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로 차별화해야 생존하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존폐 위기

부동산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관련 업소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의 거래 건수는 3만454건으로 지난해 2월(2만8741건) 이후 16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4년 동안의 6월 평균(4만2847건)에 비해서도 28.9% 줄어든 수준이다.

거래가 실종되면서 부동산 거래 수수료가 주된 수입원인 중개업소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4월 휴 · 폐업한 전국 공인중개업소는 2089곳,개업한 업소는 2081곳에 그쳤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처음으로 폐점 업소가 개점 업소보다 많았다. 5월에도 휴 · 폐업 수는 1799곳으로 개업 수(1565곳)를 앞질렀다.

특히 집값 하락폭이 큰 경기 용인과 파주,분당 지역에서 폐업하는 중개업소가 줄을 잇고 있다. 파주시 교하신도시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거래가 없어 문을 닫은 곳이 많다"며 "사무실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 운영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삿짐센터와 인테리어 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송파구 H이사업체 대표는 "거래가 없는 데다 여름 비수기까지 겹쳐 개점 휴업 상태"라며 "직원을 내보내고 일이 있을 때만 불러서 쓴다"고 말했다. 신규 입주가 한창인 서울 길음뉴타운의 한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는 "불황 탓인지 인테리어에 큰 돈을 쓰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며 "예전엔 신규 입주 때가 대목이었는데 요즘은 1주일에 한건 계약하기도 힘들다"고 전했다.

최인한/이승우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