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투자] 바닥 다지는 '블루칩' 화가 작품값…저가 매수 기회?
남편과 함께 2년 전부터 미술품 수집에 나선 컬렉터 박현주씨(48)는 최근 경매 시장에서 이대원씨의 10호 크기 1960년대 작품을 1억2000만원에 샀다. 미술 시장이 2년 동안 '횡보세'를 이어가지만 이씨의 작품값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씨는 요즘도 주말이면 비교적 작품성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인기 작가들의 수작들을 구입하기 위해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를 찾는다.

은행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에서 50억원대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김태성씨(57)는 최근 인기 작가 이우환씨의 100호 크기 '점' 시리즈를 1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지난달 서울 인사동에 매물로 나온 이 작품은 2007년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4억5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다. 이씨의 작품 가격이 바닥권에 접근했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심한 것이다.

일부 '큰손' 애호가들이 미술 시장 탐색전에 나섰다. 요즘처럼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는 재테크 포트폴리오를 짤 때 주식,부동산,금과 함께 미술품에 투자하면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은 역시 '블루칩' 및 유망 작가다. 상반기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20~40대 작가보다 거장이나 원로들의 작품에 매수세가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옥션과 K옥션,아이옥션 등 3개 경매업체가 상반기에 실시한 18차례 경매에서 근 · 현대 거장 및 원로 작가들이 인기를 끌면서 점당 1억원 이상 고가에 경매된 작품은 50여점(고미술품 포함)에 달한다. 이 중 서울옥션이 30점으로 가장 많았고 K옥션 15점,옥션단 3점,아이옥션 2점 순이었다.

이중섭의 '황소'가 35억6000만원에 팔려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또 김환기의 '영원한 것들'(21억원),'이른 봄의 소리'(6억3000만원),이우환의 '점으로부터'(9억2000만원),박수근의 '여인들'(8억5000만원),천경자의 '백일'(3억3500만원)과 '발리섬의 소녀'(2억5600만원) 등이 고가에 팔렸다.

장욱진과 도상봉 유영국 이대원 김종학 김창열 오지호 등의 작품에도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서 낙찰이 이어졌다. 박수근,이중섭,김환기 등 작고 작가들의 낙찰률은 81%로 40대 이하 작가(72%)보다 9%포인트 높아 시장 조정기에도 가격 변동성이 작다는 게 미술 시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주식 시장에서 벤처 거품 붕괴 후 대형 우량주에 투자가 쏠린 것처럼 미술 경매 시장도 옛 거장이나 현대미술 대가들 위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 '머니 무브'라고 할 만큼 큰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미술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입질은 시작했지만 보수적인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것.미술 시장에서 경매 낙찰률은 올라가지만 낙찰 가격은 횡보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망 작가 작품 가격'바닥 다지기'

[미술품 투자] 바닥 다지는 '블루칩' 화가 작품값…저가 매수 기회?
'라일락의 화가' 도상봉을 비롯해 이대원 유영국 최영림 윤중식 남관 김흥수 박고석 오지호 임직순 등 유망 작가의 작품들도 화랑가에 매물로 쏟아지면서 그림 값이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다.

최영림의 작품은 1993년의 모래 그림이 호당 200만원 선까지 떨어졌고 유영국(300만원) 김흥수(300만원) 윤중식(200만원) 임직순(150만원) 등은 2007년 가격의 절반 수준까지 내려갔다.

경매 시장에서도 이들 작품 가격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오치균의 작품은 올 상반기 경매 시장에 출품된 10점 가운데 6점,사석원의 작품은 15점 중 9점이 팔려 낙찰률 60%를 기록했다. 또 이대원의 작품은 23점 중 17점이 낙찰돼 74%를 기록했지만 작품 값은 12호 크기 '농원' 시리즈가 9200만원에 머물러 있다. 도상봉의 작품도 6점 중 2점,백남준 작품은 14점 가운데 5점만 팔려 낙찰률이 30%대로 떨어졌다.

한 미술전문가는 "국제 미술 시장은 지난해 2분기에 바닥을 찍었고 매우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5년 이상 장기 투자자라면 지금이 그림을 구입할 때"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대가들 작품 저가 매수세

올 상반기 국제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인상파 및 근 · 현대 거장들의 작품에 저가매수세가 붙었다. 좋은 작품은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추정가 범위에서 팔리고 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지난달 22~23일(현지시간) 런던에서 가진 인상주의 및 근대 화가 작품 경매에서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마네,마티스,고흐,클림트의 작품 10점이 100억~616억원에 낙찰됐다. 피카소의 '페르난데스 데 소토의 초상'은 616억원(3476만파운드 · 수수료 포함)에 팔려 피카소가 국제 미술 시장에서 '황제주'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변동성 커지는 하반기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미술 시장이 서서히 회복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내년 미술품 양도세 부과에 따른 시장 조정 기간에 대해서는 약간씩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최근 2~3년간 하락세가 두드러졌던 인기 작가들의 작품은 '바닥 심리'에 따른 매수세 확산으로 가격이 소폭이나마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동안 그림 값이 크게 떨어졌던 유망 작가들의 작품도 호가가 서서히 오르고 있어 하반기에는 횡보세를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국제 시장에 비해 국내 미술 시장의 회복 속도가 더딘 것은 내년부터 6000만원 이상 작품(작고 · 외국 작가)에 대해 양도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라며 "양도세 부과 연기 문제가 시장 회복의 변수"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