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의 신도리코 공장.복합기를 만드는 이곳은 '대차(台車 · 손수레)'라는 특이한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대차는 바퀴 4개가 달린 가로 · 세로 1m 크기의 소형 작업대를 말한다. 위칸은 제품을 조립하는 작업대,아래칸은 부품과 모듈을 담는 저장 공간이다. 한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대차는 100대.바닥에 깔린 실린더가 작업 속도를 봐가면서 대차를 움직이는 속도를 초 단위로 조절한다.

신도리코가 대차 방식을 처음 도입한 것은 2005년.김문환 기계제조부장은 "이전까지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사용했는데 대차 방식이 모든 면에서 효율이 좋아 생산라인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컨베이어 벨트 방식과 비교했을 때 대차 방식은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설치비용이 컨베이어 벨트의 10분의 1밖에 들지 않고 잔고장이 덜해 유지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생산성도 뛰어나다. 이 라인에서 한 달에 만들어내는 복합기는 1만5000대.종전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했을 때보다 20%가량 생산량이 늘었다. 김 부장은 "컨베이어 벨트 방식은 설계구조상 한쪽에서만 작업할 수 있는 반면 대차는 양쪽에서 동시에 작업이 가능해 조립시간을 20~30%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차 방식을 도입한 덕분일까. 신도리코는 세계적인 복합기 · 복사기 제조업체인 일본 리코의 10개 해외 협력업체 가운데 가장 높은 생산성을 올리고 있다. 곽장신 아산공장장은 "일본 리코 관계자들이 우리 공장의 대차 방식을 견학하러 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생산기술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초창기엔 선진국보다 공업화가 늦었던 만큼 독자적 생산기술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미국 포드자동차가 맨처음 시작한 컨베이어 벨트,일본 도요타의 JIT(Just In Time),캐논의 셀(cell) 등 선진 생산기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제조업은 선진 생산기법을 잘 소화해 국내 현장에 가장 적합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때로는 기존 생산기법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는 기업도 많다.

◆'원조' 생산기법을 최적화하는 공장

수십 · 수천가지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제조공장에서 '어떤 생산기술이 가장 좋은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만드는 제품,인력의 숙련도 등에 따라 각 생산 방식의 장 · 단점이 갈린다. 한국 제조업은 이런 다양한 생산기법을 가장 잘 소화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차 방식도 원래 일본 기업들이 고안한 것이지만 이를 최적화한 곳은 신도리코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다. 곽 공장장은 "고객사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사내 생산기술부에서 제품 특성,필요한 부품 수,생산 인력 숙련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어떤 방식이 생산성을 극대화할지를 판단한다"며 "지금 만드는 흑백복합기는 대차 방식을 적용하는 게 가장 낫지만 시장 상황이나 주문량에 변화가 있으면 셀 방식 등으로 즉각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도 선진 생산기법을 현장 실정에 맞게 최적화한 사례다. 이 회사가 현재 사용하는 생산기법은 '직서열 방식'(JIS:Just In Sequence)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생산기법인 'JIT'를 창조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두 방식의 차이는 이렇다. JIT는 각 생산라인의 수요를 파악해 시간대별로 협력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하는 식으로 재고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시간대별로 부품을 공급받기 때문에 약간의 재고가 쌓인다. 이에 비해 JIS는 자동차 생산공정과 거의 실시간으로 부품을 생산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신차 생산이 시작되면 부품 조립 공정에 대한 상세정보가 실시간으로 모비스 공장에 보내지고,모비스는 이에 맞춰 부품 · 모듈을 만든다. JIT에 비해 재고를 더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독자적 생산방식 개발,수출도 한다

선진 생산기법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창조적 방식을 만들어내는 사례도 있다. 포스코는 2007년 5월 '파이넥스'란 독자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기존 '고로' 방식의 제철 공정은 쇳물을 만들 때 부스러기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용광로에 넣기 전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와 달리 파이넥스는 이런 중간 과정을 생략,부스러기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고로에 직접 넣어 그대로 쇳물을 뽑아낸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기술 도입으로 기존 공정보다 생산성을 35% 높이고 제조원가를 15~17%가량 절감할 수 있었다.

파이넥스는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안산강철 사강그룹 등 4~5개 중국 철강업체가 이 기술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파이넥스처럼 선진국에서 배운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혁신을 이뤄내는 게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태명/장창민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