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공개 석상에서 잇따라 국제통화기금(IMF)에 비판의 각을 세우고 있다.

김 총재는 3일 일본은행 직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 자료를 통해 "한국에서 아시아 외환위기는 `IMF 위기'로 불리고는 한다"며 "이는 IMF가 위기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와 함께 (IMF를 보는) 한국인의 씁쓸한 정서를 대변한다"고 말했다고 한은이 전했다.

김 총재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날 강연에 앞서 지난달 31일 제주에서 열린 `CEO 하계 포럼'에서 김 총재는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유동성 부족 문제에 대해 (IMF가) 과잉대응했다"며 "나라마다 증상이 다른데 동일한 처방을 내렸다는 점에서 IMF 대응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13일 대전에서 열린 `아시아 콘퍼런스'에서도 IMF의 외환위기 처방에 대해 "잘잘못의 문제라기보다는 과잉대응 여부의 문제"라며 국제 금융위기의 주범인 서구 선진국과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대한 IMF 조치의 강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김 총재가 최근들어 IMF의 잘못을 파고드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제 금융안전망의 구축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축적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이날 일본은행 강연에서 IMF에 대한 비우호적인 감정이 "만약 외환위기 당시 국제 금융안전망이 갖춰져 있었다면 (위기로 받는) 고통이 훨씬 덜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즉 외국인 투자금이 신흥국에서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이 휘청대는 것을 예방하는 국제 금융안전망이 마련돼야 우리나라가 겪은 것과 같은 혹독한 시련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IMF 지배구조 개혁이나 국제 금융기구 진출 등에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고 IMF를 압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