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달을 세고 싶다면…이미 당신은 하루키 마니아"
무라카미 하루키(사진)의 장편소설 《1Q84》(문학동네) 3권이 나오자마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먼저 나온 1,2권이 100만부를 훌쩍 뛰어넘었고 3권도 예약판매만 3만부에 달하는 등 하루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1Q84》는 여성 킬러 아오마메와 작가 지망생인 남자 주인공 덴고의 이야기다. 1,2권에서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한 장씩 교체됐는데 3권에선 제3의 인물 우시카와까지 등장했다. 소설가 백영옥씨가 이 작품을 찬찬히 짚어봤다.

두 개의 달이 뜨는 1Q84의 세계로 떨어진 덴고와 아오마메는 결국 만나게 되는 걸까? 이 마지막 질문이 《1Q84》 3권으로 이어지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결국 영원한 사랑 덴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던 아오마메는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한다.

그녀에게 삶은 덴고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했고,희망이 싹트는 바로 그 순간 황량한 1Q84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희미한 존재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가 보는 '달'의 이미지를 닮아 모성적이다. 아오마메가 느끼는 신은 은색 메르세데스 쿠페에서 내려 자신의 어깨에 달걀색 코트를 덮어주던 세련된 중년 부인의 이미지니까 말이다. 그건 '매트릭스'의 신 오라클이 부엌에서 쿠키를 구워내는 풍만한 몸매의 중년 아줌마라는 사실과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

예정되지 않은 책을 쓰게 된 작가의 심리란 어떤 걸까. 이미 자신에 의해 마침표가 찍힌 소설을 계속 이어 쓴다는 건 작가에게도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창조한 세계를 바둑판 같은 창작노트에 복기하면서 이미 닫아 두었던 두꺼운 문을 열어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불러오는 복잡한 일이니까. 그래서 하루키는 덴고와 아오마메를 추적하는 '우시카와'를 새로운 화자로 편입시켰다. 이들이 만나기 위해선 집요하고 기괴한 메신저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시카와는 종교집단 '선구'의 교주를 죽인 아오마메를 잡기 위해 교단 측에서 고용한 변호사다. ) 그것이 달이 두 개가 뜨는 기묘한 세상의 일인 만큼 더욱 더.

하루키의 마라톤 완주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나는 그의 소설이 점점 더 길어졌다고 생각한다. 가령 새벽 3시에 일어나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하루 4시간 글쓰기를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아멜리 노통브의 500장짜리 경장편이 그녀의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면,하루키 또한 글 쓰는 근육을 단련시키는 방법을 터득할 때마다 조금 더 길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키워진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내부로 향해 있던 출입구를 외부로까지 확장해 나갔다. 필연적으로 짤막한 아포리즘 세계에서 길게 쓰지 않으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 '우물파기'의 세계에 편입된 셈이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 하루키가 발견한 것은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젊음이 유치한 사이비 종교의 논리에 빠졌다는 점이었다. '질문'은 없고 오직 '정답'만 존재하는,그로선 납득하기 힘든 세계 말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는 '유치한 것의 본질적인 힘'이나 '선과 악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장소나 입장을 바꾸어가며 변하는 것,즉 균형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후 하루키의 이야기엔 냉소와 무관심 대신 관계와 헌신,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다. 이른바 막장처럼 읽혀지는 사이비 종교,아동학대,남성폭력과 근친상간 등이 등장하는 것도 대중적 코드를 엮어 적극적으로 사회 현상들과 '접속'하려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1Q84에 열광하는 건 그것이 하루키적인 것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쥐'나 '양사나이'같은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나오던 초기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종합 선물세트가 당연히 반가울 것이고,모호한 초현실성에 진저리를 쳤던 사람이라면 세계 소설계의 가장 큰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캐릭터 장르물의 매력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밤하늘의 달을 세고 싶다면…이미 당신은 하루키 마니아"
게다가 그의 소설엔 하루키 자신의 분신 같은 익숙한 남자 캐릭터가 나온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덴고'는 어김없이 외로운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담백하고 내밀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 고요한 식물성을 표방하는 그의 소설은 피투성이 동물성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긴요한 신경안정제 역할을 했다.

그가 듣는 야나체크의 음악,그가 번역하는 피츠제럴드의 소설,그가 좋아하는 비치 보이스의 팝송을 듣고 싶은 건 그의 평온한 일상을 그저 닮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거나,매일 원고를 20장씩 쓰거나,취미로 번역을 하는 이 성실한 소설가는 영감에 사로잡혀 대작을 쓰고 알코올 중독자로 처절히 죽어간 수많은 천재들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 좋은 '징조'처럼 보인다.

마돈나나 빅뱅을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는 이미 소설계의 록스타다. 그가 세계의 끝 어딘가에서 소설을 쓰더라도 팬들은 멋진 피드백을 보낼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오기 무섭게 '1Q84 해설집'이 나오고,'아오마메의 다이어트용 샐러드 레시피'가 나오는 작가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1Q84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공연히 밤하늘에 달이 몇 개인지 세고 싶다면,당신 역시 이미 그의 마력에 중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