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광복절(8월15일) 이전에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반환 등을 공식 발표하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은 한 · 일 양국 관계에는 일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정부가 포기했던 문화재 반환을 민간단체와 학계가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에 남아 있는 문화재가 공식적으로만 6만여점에 달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일본 총리의 담화 내용에 대한 평가도 긍정론과 한계론이 교차하고 있다.

◆전향적 자세는 긍정 평가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혼사,장례,잔치 등 주요 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등을 시기 · 주제별로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조선왕조 의식의 변천사와 모습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로,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조선은 1392년 건국 초기부터 의궤를 만들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됐고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것은 1601년(선조34년) 만들어진 의인왕후의 장례에 대한 것이다. 오대산과 태백산,정족산 등에 분산 보관해온 것을 일본 조선총독부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왕실의궤는 일본이 보유한 171책 이외에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했던 프랑스가 339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1965년 '한 · 일 간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문화재 1432점을 반환한 이래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자국 언론의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한국 시민단체와 국회 등의 문화재 반환 요구가 거세지면서 최근 비공식적으로 반환 여부를 논의해 왔다. 간 나오토 내각이 새로운 한 · 일 관계 진전의 필요성 등을 의식해 왔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 진출을 앞두고 우리 측에 과거 강제 징용 할머니들에 대한 개인 보상문제를 협의하자는 공문을 보내온 것 등도 한 · 일 관계 진전 분위기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남아 있는 문화재 수두룩

현재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는 확인된 것만 6만점이 넘는다. 지난 2월 문화재청이 일본의 250여개 기관 및 개인이 모두 6만1409점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도쿄 국립박물관에 6715점,국회도서관 6748점,궁내청 4678점,교토 오타니대학 5605점 등 일본 전역에 한국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일본 내 한국 문화재가 수십만점에 이를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학계 인사들과 시민단체,불교계 등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을 환수받은 직후인 2006년 9월부터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요구해왔다.

일단 일본 정부가 나름대로 과거사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려는 성의와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두루뭉술한 메시지를 던졌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비해 이번에는 한국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고 평가하면서 "사할린 지원과 징용자 유골 반환문제 등과 함께 일본이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간 총리의 담화문 역시 반복되는 사과 문구에 실질적인 후속 조치들이 빠져 있어 여전히 미흡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과거 수준의 답습이란 얘기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원래 한일 지식인 1000여명이 서명한 것은 '한일병합'의 원천 무효였다"며 "조선왕실의궤 반환이 국내 문화재 도서의 장기적인 반환 기조를 밝힌 것도 아니고 한일병합은 합법이란 인식 위에서 나온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