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 업체 시몬느의 박은관 대표는 올 들어서만 석달가량을 뉴욕에서 보냈다. 코치,마이클 코어스,마크 제이콥스,도나카렌 등의 명품 핸드백 업체와 내년 가을에 출시될 제품 개발을 상의하기 위해서다. 뉴욕에서 돌아온 박 대표는 18일 경기도 의왕의 본사 3층 회의실에서 디자이너들과 함께 주문받은 신제품에 적용할 소재와 디자인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탁자 위는 가죽,천 등으로 빈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내년 여름까지 출시될 제품은 공급을 마쳤고 요즘은 내년 가을용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며 "바이어들로부터 2013년 물량까지 선주문받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설립된 시몬느는 코치,마이클 코어스,마크 제이콥스는 물론 버버리,도나카렌 등 전 세계 25여가지 명품 브랜드 핸드백을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100% 수출하고 있다. 전 세계 명품매장과 백화점에 있는 코치 제품 중 25%,마이클 코어스 90%,마크 제이콥스의 80%가 시몬느가 만들어 납품한 것이다. 박 대표는 "전 세계 유명 백화점에 있는 핸드백 중 우리 제품이 40% 정도"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8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주문량이 작년에 비해 20% 이상 늘어 올해는 3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불경기에 명품 소비가 줄어든다는 '상식'이 무색할 정도.박 대표는 "불황에는 명품브랜드들이 가장 큰 거래처와는 거래를 늘리고 거래량이 적은 업체엔 주문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라며 "시몬느는 거래 브랜드 모두에 최대 밴더로 등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현재 운영 중인 중국,인도네시아 공장 4곳에서는 주문량을 맞출 수 없어 내달 베트남 호찌민 인근 9만9000㎡ 부지에 새 공장을 준공할 계획이다.

시몬느의 경쟁력은 소재,디자인 개발부터 완제품 검수까지 모두 해 내는 이른바 '풀 서비스'에서 나온다. 명품브랜드는 시몬느에서 개발 · 생산한 제품을 포장만 해서 파는 셈이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디자인 패턴이 14만가지에 달할 정도다. 본사 직원 220명 가운데 디자인 관련 인력만 80명에 달하고 디자인 개발에만 연 100억원 이상을 쓴다. 박 대표는 "바이어들이 자체 개발한 디자인을 가져와도 우리가 보유한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디자인 보안이 생명인 명품업계의 내로라하는 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몬느는 생산은 해외에서 하지만 디자인만큼은 한국 디자이너가 한국에서 하는 걸로 유명하다. 박 대표는 "글로벌 ODM 섬유회사들도 비용 절감을 위해 동남아 현지 공장에서 디자인과 생산을 같이하고 있다"며 "이러면 노하우가 유출돼 후발국가에 따라잡힌다"고 설명했다.

시몬느는 최근 연간 1600억달러 규모의 명품핸드백 시장에서 기존 명품에 비해 싸고 품질은 유사한 이른바 '엑세서블 럭셔리'시장이 400억달러 수준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에 맞춰 시장 선점에 나설 계획이다.

시몬느는 자체 브랜드 출시를 앞두고 내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330㎡ 부지에 지하 4층 지상 5층 규모의 핸드백 모양 빌딩을 지을 예정이다. 3층과 4층에는 핸드백 박물관이 들어서고 지하 1층은 국내 무명디자이너들에게 제품판매 공간을 무상으로 임대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2013년까지 5000억원의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명품브랜드가 나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