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투자론 시간에 왜 설비투자를 가르치지 않고 증권투자를 가르치시죠?"

윤계섭 서울대 경영대 교수(65 · 사진)가 오는 31일 정년퇴임을 맞는다. 윤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나 서울대에 증권 관련 과목을 처음 개설하던 1970년대 초를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1970년 9월 상대에 몸담으면서 맡은 과목이 회계감사였습니다. 이어 1971~1972년 투자론,자본시장론,증권분석 강좌를 잇달아 개설했는데 당시만 해도 증권학이라는 학문이 매우 낯설었습니다. "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그는 "'투자론' 수강을 신청한 일부 학생이 첫 강의 때 내용이 다르다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과목 개설을 허가해준 변형윤 학장으로부터 "학생들에게 투기를 가르치는 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만 40년을 봉직한 윤 교수는 증권학의 토대를 닦은 대표적 학자다. 1979년 전국에서 증권을 가르치는 교수가 채 10명이 안 될 때 한국증권학회를 설립한 이후 증권학회장,재무학회장,세무학회장,금융학회장,FP(재무설계)학회장 등을 지냈다. 코스피 200지수 개발 및 코스닥 창설에 관여했고 자본시장법의 산파역을 담당했으며 금융투자협회와 창의자본㈜ 설립준비위원장을 지냈다. 국내 자본시장 발전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고교 시절 부유하게 살던 이웃집 사람이 하루 아침에 집을 팔고 알거지 신세가 되는 걸 보고 충격받았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1962년 증권파동 때 일종의 선물거래로 큰 피해를 입었던 거죠." 이로 인해 그는 증권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강한 의문을 갖게 됐고,교수의 길을 걸으면서 평생을 증권 연구에 몰두하는 계기가 됐다.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됐던 시절 워낙 월급이 적어 부수입을 벌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증권 투자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개미투자자였지만 꽤 재미를 봤어요. 한번은 밑천 40만원으로 산 주식이 5배나 뛰어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투자자로서의 관심은 곧 학문적 관심으로 바뀌었다. 산더미처럼 모은 증시 데이터는 연구 자료가 됐고 투자를 위해 읽은 외국 서적들은 논문 작성의 자양분이 됐다.

학계와 업계를 두루 꿰뚫는 노교수가 국내 자본시장 성장을 위해 내린 처방은 분명했다. "금융소비자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지만 대다수 국민이 금융문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윤 교수는 당분간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사를 정리할 계획이다. "거래소,협회 등 기관별 역사는 있지만 증권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증권산업사는 아직 없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금융지식을 위주로 한 금융이해력 교육에서 한발 더 나아간 금융능력개발 교육을 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

그는 현재 한국경제신문이 제정한 다산금융상 심사위원장이며 신한지주 사외이사,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한편 이날 퇴임식은 이 교수와 함께 정년을 맞은 이장무 전 총장(기계항공공학부)과 이승훈 경제학부 교수 등 모두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내 문화관에서 열린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