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김근영씨(50)는 요즘 고민 거리가 하나 늘었다. 2007년 서울 용산 국제업무지구 내 건물을 28억원에 사들였지만 최근 사업 자체가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을 운영하는 그는 앞으로 오피스를 분양받아 사무실을 옮기겠다는 장기적인 목적을 갖고 투자했다. 대지지분 약 132㎡(40평) 규모로 3.3㎡당 7000만원으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김씨는 "정부와 코레일이 다시금 사업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데다 어차피 장기 투자라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면서도 "원주민 반발 등 사업에 대한 리스크가 만만치 않아 사업이 앞으로도 계속 지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땅값 3.3㎡당 2000만원 이상 떨어져

용산 동부이촌동에 거주하는 박성관씨(46)도 비슷한 시기 서부이촌동의 한 단독주택(대지지분 100㎡)을 3.3㎡당 70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샀다. 그는 국제업무지구가 개발되면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했다. 현재 3.3㎡당 5000만원 이하로 호가가 떨어진 데다 거래도 안된다. 박씨는 "요즘 들어 괜히 샀다는 후회를 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느니 적당한 때를 기다려 팔고 나오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단군 이래 최대 역사로 불리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2~3년 전 이곳에 투자했던 강남 부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최근 고객들로부터 이대로 가다간 정말 용산 개발이 100년은 걸리는 게 아니냐는 하소연을 많이 듣고 있다"며 "특히 건물보다는 아파트나 잘게 쪼개진 빌라 지분을 산 투자자들의 우려가 더 크다"고 말했다.

고 지점장은 또 "대부분 3.3㎡당 7000만~8000만원까지 높은 가격에 산 사람들이 많다"며 "지금 같은 불황기에 억지로 팔려면 손해를 왕창 봐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도 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수 씨티 프라이빗뱅크 팀장도 "국제업무지구와 통합 개발되는 서부이촌동의 경우 지금 계획대로 라면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작년 초 발생한 용산 참사도 이 일대 개발 사업의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사업의지 강해…기다려보자

김 팀장은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는 기다리는 것 외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아니냐"면서 "다행히 코레일과 국토해양부가 민영개발이 안된다면 공영으로 개발하겠다고 한 만큼 오히려 사업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개발 전문가인 송인규 부동산국제마스터 연구소장은 "용산 지역은 크게 국제업무지구 개발,미군기지 공원화,원효로 및 한강로 일대 재개발 등 세 가지 이슈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움직인다"며 "이들 사업이 부동산 경기 침체나 정치적인 이유로 줄줄이 지연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가장 규모가 큰 국제업무지구 사업의 경우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코레일이 이제 와서 사업을 없던 일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보상 문제로 크게 반발했던 서부이촌동 원주민들도 최근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반대 세력이 크게 약화돼 사업이 재개될 경우 오히려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코레일이 갖고 있는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 및 한강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000㎡를 재개발해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과 오피스,주상복합 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총 사업비 31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이다. 2007년 서울시와 코레일이 서부이촌동 통합안에 합의한 이후 개발에 탄력을 받았으나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가 불거지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건설사 지급보증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코레일 측이 삼성물산을 사업자에서 제외하는 대신 4조5000억원을 투입,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하겠다고 밝혀 사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