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입을 매년 늘리는 대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자는 '조기 관세화'가 올해도 물 건너갔다. 국내에 쌀이 남아도는데도 정부는 올해보다 2만여t이나 많은 34만7000t의 쌀을 내년에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쌀 조기 관세화를 하려면 농민단체들과 합의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하는 시한이 이달 말로 임박했으나 관련 부처 협의 등의 기본적인 절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쌀 조기 관세화는 쌀 시장을 개방하되 고율의 관세를 매기자는 것으로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정책조정회의를 해야 하고 국무회의까지 거쳐야 하는 중요한 안건"이라며 "실무적으로 필요한 절차를 거치는 것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외교통상부는 쌀 조기 관세화를 WTO에 통보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지난달 말까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농식품부에 요청했으나 농식품부는 장관 교체와 인사청문회로 시기를 놓쳤다.

지난달 30일 취임한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쌀 조기 관세화를 추진하기 위해 농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올해 안에 쌀 관세화를 마무리짓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유 장관이 농민단체와 협의하겠다고 거듭 밝힌 것은 최선을 다해 쌀 조기 관세화를 추진하겠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강하다"며 "내년에 쌀 관세화를 하겠다고 못 박은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재정부도 내년 쌀 관세화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쌀 관세화와 관련된 어떠한 의견도 전달하지 않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 쌀 관세화를 WTO에 통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 관련 부처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UR) 재협상에서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2014년까지 의무수입물량(MMA)을 매년 2만여t씩 늘리기로 합의했으며 올해 32만7000여t의 쌀을 의무 수입해야 한다. 정부는 연이은 풍작으로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매년 늘려야 하는 의무수입물량이 큰 부담이라고 보고 작년부터 조기 관세화를 추진해왔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