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15일.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이자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이하 리먼)가 파산을 신청했던 날이다.

리먼은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한 매각 협상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금융시장 전체가 혼돈에 휩싸였다. 코스피 지수는 1000선이 무너졌고 투자자들은 눈물을 삼켰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코스피 지수는 1800선으로 뛰어올랐고 리먼 사태 이전보다 오히려 20% 이상 상승했다. 리먼 사태 이전에 국내 증시를 견인한 것은 '펀드'였다. 적립식펀드의 열풍으로 시작된 펀드시장의 확대는 증시의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이제 펀드는 상승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은 우리 주식을 담고 있고 증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펀드는 대량환매를 보이면서 증시의 발목을 잡는 애증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올해들어 코스피 지수가 1700선 이상에서 거래된 4월 이후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약 10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5342억원이 빠져나갔다. 2006년 5월 이후 세번째로 많은 규모다. 9월들어서만 1조6505억원의 뭉칫돈이 펀드를 떠났다.

코스피지수가 1800선에 올라서면서 투자자들이 앞다퉈 환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펀드자금이 주가연계증권(ELS)이나 랩 어카운트(Wrap Account)로 재유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환매의 규모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랩 자금들은 소수종목에 집중 투자하면서 즉각적인 매매를 추구한다. 따라서 펀드처럼 증시를 전체적으로 떠받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증시에서는 투신권의 매도가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다. 전날 연고점을 돌파했던 코스피 지수는 기관의 순매도에 하락세로 반전했다. 이날도 1820선으로 올랐던 코스피 지수가 투신권의 매도공세에 1810선으로 내려앉은 상태다.

이민정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지수가 1800선을 상향돌파한 후에도 추세적인 상승세를 지속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초기 3개월간은 환매가 이어질 수 있지만, 중기적으로는 자금유입이 재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분간은 펀드 환매가 지속된다는 전망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상승추세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자금유입의 계기된다는 얘기다.

2007년 중반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코스피 지수가 장기박스권의 상단인 1400선을 돌파했다. 당시 약 6조3000억원의 펀드환매 자금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지수가 강력한 상승세를 보이자 28조원에 달하는 기록적인 순유입을 나타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